이태영 (올림픽 컨트리클럽 사장, KOC위원)

나는 평생을 북한산과 함께 살았다. 그 푸른 숲에서 영혼을 살찌우고 수십 갈래 골짜기를 뛰어다니며 몸을 단련했다. 내가 태어난 곳, 서울시 성북동은 북한산 구진봉 바로 밑이며 30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곳, 고양시 동산동은 문수봉을 마주보는 서오릉 기슭에 있으니 북한산과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어려서 다니던 성북초등학교의 교가는 ‘북한산 줄기줄기 물 맑은 고장-’으로 시작된다. 이어 경동중, 고등학교 시절엔 ‘삼각산 높은 봉은 기상이 씩씩하고-’ 라는 첫 머리의 교가를 불렀다. 지금 북한산이냐, 삼각산이냐의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북한산 중심의 세 봉우리를 지칭하여 삼각산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배웠다. 따라서 때 아닌 개명논쟁은 한마디로 난센스이다.

북한산 능선을 오르며 호연지기를 키운 것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삼천골이나 비석골, 또는 진관사 골짜기를 찾아 두 세 시간의 짧은 솔로등반은 즐긴다. 10 여 년 전에만 해도 음력 보름날 달빛을 벗 삼아 야등(夜登)을 즐기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밤, 눈 쌓인 비봉에서의 경관에 도취되어 한잔 두잔 기울이다 하산 길에 슬립한 뒤로 달밤 등산을 접고 말았다. 어쨌거나 북한산은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한강이 서울의 젓줄이라면 북한산은 겨레의 심장이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자랑스러운 명산이다. 티베트사람들이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성모의 산’으로 신성시하는 것처럼 우리도 북한산의 영기를 에너지화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양시 벽제동 산마루의 올림픽 컨트리클럽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삼각봉은 그림 같은 절경이다. 흔히 중국의 황산이나 태산이 아름답고 높다 하나 인수봉 같은 오뚝한 미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흰 구름을 쓴 바위머리가 손에 잡히는 듯, 골짜기 깊은 곳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 보는 이의 마음을 유혹한다.

내가 평소 존경하는 산악인 모리스 에르조그(세계 최초로 8천 미터 고봉에 초등한 프랑스 산악인으로 훗날 샤모니 시장과 IOC위원을 지냈다)를 만나 서울방문 길에 북한산에 함께 오르자고 제의한 적이 있으나 바쁜 일정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뒤로 지난 해 가을 히말라야 14좌에 오른 슈퍼 알피니스트가운데 세르지오 마르티니 등 3명이 한국의 엄홍길 등 3명의 완등자와 함께 북한산에 올라 탄성을 터뜨렸다. 인구 1천만이 넘는 수도 서울을 끼고 이런 아름다운 산이 있다니 놀랍다고 했다. 더구나 주말 주중 가릴 것 없이 북한산을 찾는 등산애호가가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는 이야기다.

북한산에서 북한산성 쪽 일대가 북한동이다. 서울의 효자동 1번지에 청와대가 있는 것처럼, 고양의 북한동 1번지가 바로 산 정상이다. 그 행정구역을 굳이 따지고 싶지 않지만 세 봉우리의 92%가 고양시 땅이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누가 산을 옮겨 어디로 가져가겠는가. 북한산은 여전히, 엄연히 그곳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산이 있기에 내가 산에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알피니즘의 순수성이 북한산의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북한산은 고양 땅”이라는 이름을 내 건 사진전시화와 강연회, 그리고 문화유적 답사산행이 고양문화재단, 고양신문 주최로 열린다는 소식이다. 고양시민의 자긍심, 자존감을 높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고양 시민정신의 뿌리가 된다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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