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

아침마다 별 일이 없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산 호수공원으로 나선다. 호수공원 들머리에는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올망졸망한 바구니에는 토마토나 햇감자들이 층층 담겨 손님을 기다린다. 가지도 몇 개씩, 파 몇 단, 상치나 깻잎, 푸성귀도 조금씩 놓여 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할머니들은 물건을 파는 짬짬이 쉬지 않고 손을 놀린다. 고구마순이나 콩껍질을 벗기거나 열무를 다듬는다.

노래하는 분수대 광장을 지나치자면 허전한 느낌에 젖는다. 지난밤 하늘 높이 오색찬란한 물을 뿜던 분수는 멎어있고 텅빈 광장에는 바람만 건너다닌다. 분수대 둘레와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들이 나뒹군다. 비닐봉지, 음료수 깡통, 휴지 뭉치, 깔개 조각, 과자껍질… 귀로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눈으로 현란한 분수를 감상하고도 어찌 쓰레기를 내던지고 갈 생각을 하는 걸까. 

잠시 속상했던 기분도 어느덧 호수 둘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이내 풀어진다. 자연이 낳고 기른 풀과 나무, 새들이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물가 가장자리에는 갈대들이 무성해서 바람이 일 때마다 사각사각 잎새를 부벼댄다. 길쭉한 소시지 모양의 애기부들은 키가 껑충 자라 흔들거린다. 그 곁에는 털부처꽃이 보랏빛 꽃들을 피워 물속 식물들을 돋보이게 한다. 

물 위에서는 잠자리들이 곡선을 그리며 날고 있다. 풀밭에서는 일찍 잠을 깬 풀벌레들이 갖가지 소리로 울어댄다. 체험학습장 물가에는 오리 식구들이 한가롭게 물질을 하고 몇 마리는 바위 위에 나와 부리를 박고 잠을 청한다. 오리들은 처음에 찾아왔을 때와 달리 사람들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이 호수에서 어우러져 산다.

호수길 중간쯤에 이르면 벚나무, 느티나무 숲 아래 작은 꽃들이 반긴다. 봄날 군데군데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는 이제 둥그런 솜털모자를 쓰고 홀씨를 퍼뜨린다. 밥풀뭉치 같은 토끼풀꽃과 쑥부쟁이, 개망초들도 여기저기 피어 있다.     

이렇듯 제 철따라 제 빛깔로 살아가는 자연의 길 따라 걷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마주친다. 대부분 운동 삼아 공원길을 걷는 사람들인데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나 3~40대의 아주머니들이 많다. 인생살이에서 무엇보다 건강이 소중함을 몸으로 깨달은 사람들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가끔씩이나마 아이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호수공원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5,6학년이나 중학생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아이들은 두세 명씩 짝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걷거나 어린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발맞춰 걷는다. 덩치가 큰 아이들이 헉헉대며 뜀박질을 하기도 한다. 또 자전거를 타고 휘휘 빠르게 곁을 지나는 아이들도 있다.

이른 아침 호수길에 나오는 이 아이들을 눈여겨보라. 아이들의 모습은 저마다 달라도 그 얼굴에는 모두 생기가 흐른다. 아침햇살 사이로 힘차게 휘두르는 팔다리는 얼마나 건강한가. 맑은 아침 기운을 마시며 마음도 한껏 밝아지겠지. 그래서 아침에 만나는 아이들은 나무처럼 믿음직스럽다. 꽃처럼 예쁘고 사랑스럽다. 호수공원의 아침은 이렇게 아이들 속에서 더욱 싱그럽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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