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봉의 책이야기

아름다운 글을 읽는다. 그러다 궁금증이 생긴다.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은 시인가, 산문인가? 압축과 풀음이라는 두 대칭적 글쓰기가 하나의 글 안에 함께 녹아 있을 수 있는 건가? 산문시. 그렇다. 산문시라는 장르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은 산문시는 분명 아니다. 머리 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내 머리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글은 <달맞이꽃에 관한 명상>(세계사)이라는 책이다.

저자 최승호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시인이다. 시인인 그가 이렇듯 애매모호한 책도 썼다. 그러나 지금 그 애매모호함을 따지려 들지는 말기로 하자.

우리는 그가 보여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따스한 눈길을 함께 느껴보면 그뿐일 것이다. 그는 우리 주변의 너무도 미약한 혹은 평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음조는 너무도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그는 지렁이, 호박, 거머리 따위들에게 애정을 준다. 그는 또 우리가 어렸을 적에 보며 신기해했을 소금쟁이의 묘기에 매우 감탄한다. 그는 또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말잠자리의 고독, 허수아비의 외로움에 관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서 결론을 얻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그는 역시 시인이다. 그는 그가 얻는 이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읽은 이들의 가슴에 조그맣고 따뜻한 파문을 일으킬 뿐이다.

이 가을, 당신도 한 시인이 던진 조약돌을 가슴으로 맞아줄 여유쯤은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 골치 아픈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시와 산문의 경계는 어디인가?

<출판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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