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산 택지개발 안돼

지금 고봉산에 가면 ‘진달래족’을 만날 수 있다.
‘진달래족’은 봄이면 진달래 따러 산에 간다는 고봉산의 ‘눈이오나 비가오나 고봉산에 간다 파’의 별칭. 고봉산에 오르며 눈인사 나누던 40에서 50까지의 아줌마들이 결성한 자칭 ‘진달래족’의 맏언니 이란옥씨는 이사 못 가는 첫째 이유가 “고봉산이 있어서”란다. 늘 만나던 산자락에서 모인 ‘진달래족’은 일족이 다 모이자 고봉산 정복에 나섰다.

고봉산은 일산 부근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해발 208.8m. 그래서 이름도 높을 고(高), 산봉우리 봉(峰)자를 쓴다. 고봉산에는 40분에서 2시간 30분 정도의 산행 길이 있다. 활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영천사를 지나 중산마을로 나서는 길은 40분 정도면 끝난다. 그러나 맘먹고 나서 장사바위를 거쳐 수연약수와 다시 만경사를 들렀다면 족히 2시간 30분쯤 걸린다.

고봉산에 오르는 이들이 입을 모으는 건 “고봉산이 부담없이 오를 수 있은 산”이라는 것. 중산마을에 사는 박준서씨는“높은 산이야 매일 다니기가 쉽지 않지. 고봉산은 높이가 적당해서 운동하기 좋은 산”이라고 말했다. 박준서씨에게 고봉산은 명의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당뇨가 고봉산에 오르면서 잡혔다. 매일 부인 서희진와 산에 오르는 건 ‘건강다지기’면서 또한 ‘노년의 즐거움’.

고봉산에서는 등산으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들이 많았다. “고봉산은 종합병원”이라는 이경숙씨는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친구따라 일산으로 이사왔다. 지난 해 11월부터 고봉산을 오르기 시작한 이경숙씨는 “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몰려서 안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면서도 귀뜸했다. “고봉산에 다니면서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고.

산중턱쯤에서 딸의 4살된 손을 잡고 내려오는 재연씨를 만났다. 네 번째 아이를 낳고 허리가 너무 아팠다는 재연씨는 딸들의 대동하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방학 중에는 막 태어난 갓난아기만 빼고 딸 셋과 함께. 개학한 후에는 셋째 자영이만 데리고 다닌다. 자영이 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있다. 언니들과 도토리 줍던 즐거움이 못내 아쉬워 산에서 주운 봉투에 옹갈옹갈한 도토리 몇 개을 주워 모았다. “힘들지 않니?” 수줍은 웃음 가득한 채 고개만 살래살래 흔든다. “만경사쪽으로 내려가면 밤도 많이 주을 수 있어요.”재연씨가 알려줬다.

고봉산 정상에는 민간인은 오를 수가 없다. 풍문으로‘대남전파차단시설’이라는 거대한 철탑과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이 군부대를 빙돌며 장사바위와 수연약수 만경사를 갈 수는 있다. 장사바위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이 뜸한 편. 약간 가파른 산행 길이다. 혹 군부대쪽으로 길을 잘못 들지만 않는다면 만경사와 수연약수가 갈라지는 장사바위 앞 의자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고봉산은 고양시민들의 쉼터다. 거의 초록색을 잃어가는 아파트 숲 사이에서 시민들의 숨을 고르게 해주는 광합성 작용이 활발한 산소 공급처다. 그러나 산행 길 일부를 포함한 고봉산 일부가 택지개발로 잘려나갈 형편이다.

고양시민들은 고봉산에 오르기 위해 새로운 산행 길을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오르는 이들이 많으니 걸음걸음으로 새 산행 길을 만들기야 어렵지 않겠다. 그러나 아파트 숲 사이 끼인 고봉산이 매일 만나는 친구 같은 지금의 고봉산 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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