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역과 같이한 역사

허허벌판이던 와야촌 마을에 뚝딱뚝딱 철길이 생기더니 뚱다다닥 일산역이 만들어졌다. 1904년. 일산장은 이 일산역과 역사를 같이한다.
낮은 구릉지대로 집이라고 해야 한 두채던 와야촌에 일산역이 생기면서 역 주변으로 장이 서기 시작했다. 일산장의 시작을 1905년쯤으로 본다. 공식적인 문헌에 오른 것은 1908년으로 일본이 만든 ‘한국수산지’에 백석장(흰돌장)과 함께 기록이 남아있다.

철도가 생기기 전 고양은 주로 뱃길을 이용해 장이 형성되었다. 대화동 부근에 있었던 사포장은 한강의 하천을 끼고 있었다. 3, 8일장. 백석동 흰돌마을에 서던 백석장, 일명 흰돌장도 도촌천(백석천)을 끼고 섰다. 5, 10일장. 곡릉천을 낀 원당 신원장도 최근 역사에 기록된 장이다.

1905년쯤 경의선 건설로 철도를 중심으로 유통에도 새로운 변화가 인다. 이때 고양에 등장한 게 일산장이다. 5일과 1일에 장이섰으나 근처 파주 봉일천장과 겹치자 3, 8일장으로 바꾼다.
일산장이 서면서 가까운 대화 장말, 장촌마을의 사포장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어 1920년대 홍수를 막기 위한 한강둑 공사로 흰돌마을까지 들던 뱃길이 끊기면서 백석장도 명맥이 끊겼다. 결국 일산장이 재래시장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유일한 장이 되었다.

옹기류가 일산장의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일산장 부근, 현재 센스빌아파트가 건설 중인 지역에 옹기 굽는 가마터가 많았다고 전한다. 이곳에 독정리(독쟁이)라는 지명이 남아있기도 하다. 현재 탄현SBS 주변에서는 질그릇을 구웠다. 그래서 옛이름은 동이전.
고양문화원의 오수길 연구관은 현재 고양파출소에서 택정류장 근처가 원 시장자리로 기억했다. 현재 상가와 장이 서는 지역은 논이었다고. 현대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곳은 옛 우시장 자리.

오수길연구관은 40년대 경의선을 타고 서울로 통학을 했다. "기차를 타려고 일산시장을 지나다보면 커다란 가마솥 두 개에서 장작불로 먹음직스럽게 끓던 '신가네설렁탕'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일산역 주변으로 무질서하게 자리잡았던 상가들이 사단법인을 만들어 새 상가를 짓는다. 그때만 해도 최신 상가. 그리고 옛보부상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3일과 8일이면 310번 지방도를 점령한 장이 서는 모습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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