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동의 유쾌한 송년음악회

제야를 하루 앞둔 구랍 30일. 땅거미가 오금동(덕양구)의 야산 자락에 드리울 즈음에 마을 간선로와 이어지는 좁은 농로에 난데없는 차량 행렬이 밀려 마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해질 녘에 웬 외식배달 트럭까지 들어와서 번잡스럽게 하지? 영문 모를 동민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지만 마을 지도자 등 알만한 사람은 어떤 잔치가 벌어지는지 쉽게 짐작이 갔다.

오금동 산자락에 대형 화실을 갖고 있는 서정(瑞正) 이승연화백이 연말이면 송년 음악회를 갖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오후 여섯시가 되자 100평이 넘는 이화백은 널따란 화실은 빈자리가 거의 없이 손님들로 메워졌다. 이날 초대객들은 주인 이화백과 인연을 맺고 있는 고양시 사람이거나 미술계 선후배들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활동 중인 이화백 고향(전남 담양) 출신의 국악계 인사들도 많이 찾아 왔다. 남천 송수남 교수, 하철경 미술협회이사장 등 한국화단 중진와 권오갑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전 과기처 차관) 등 고양시 출신의 인사들이 여럿 보인다.

음악회는 국악과 양악 혼합으로 편성됐지만 기본은 우리 가락으로 짜여져 있다. 이날음악회를 기획한 대금연주자 김평부씨는 “한국화의 아름다움과 우리 가락의 우아함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주실로 쓰인 화실은 온통 서정화백의 대형 한국화로 장식돼 있고 이날 연주된 음악은 일부가 서양 악기에 의존했지만 그 줄기는 모두 우리의 귀에 익은 가락들이다. 

서막은 전위음악가 이은수씨가 요란한 전자 음악으로 터트렸다. ‘마스터 건반’으로 불리는 신디사이저 음악이 차가운 밤공기를 가른 후 만능가수로 알려진 허연성의 신나는 가요무대가 펼쳐졌다. 이어 5인조 사운드 그룹 ‘미티(Mitty)’가 꽹과리, 북, 징 등을 두들기며 ‘소원성취 발원’ 공연에 들어갔다.

이상희가 주도하는 발원 춤은 요란한 타악 선률을 타고 엄숙함과 흥겨움이 기복을 일으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룹 사운드가 일으킨 흥은 김형옥의 판소리 ’사철갗와  박영순의 춤 ‘풍월도’가 이어갔다.

시인 윤고영씨의 구수한 덕담과 재치있는 출연진 소개로 진행된 이날 송년 음악회는 후반에 들어서 우리 화풍과 우리 가락이 어우러지는 본래의 기획 의도가 그대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평부의 대금, 임상례의 거문고, 박선영의 가야금이 차례로 연주하는 우리의 전통 가락은 화실에 걸려진 산수화의 수묵화의 비경을 돌고 돌아 어둠이 깃든 오금동 산자락 구석구석을 울려 펴져 나갔다. 

이날 송년 음악회의 절정은 조정애(판소리) 이수경(경기민요) 이원태(고수) 등 3인조공연. 특히 조정애가 열창한 ‘심봉사 눈뜨는 장면’은 청중들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오연주가 서도 소리로 들려준 평안-황해도 지방의 난봉가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북한 채집 민요라서 관심을 끌었다.  

오금동의 송년 잔치는 단순한 음악회로만 끝나지 않았다. 대체의학 연구가인 이상수의 자연치료법 시범과 태극권연구가 진영규의 태극권시범이 이날 행사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명우 레슬링협회전무가 열심히 뒷풀이 자리를 지켜 시선을 모았다.

고양의 명산 북한산 자락에는 이름있는 예술인과 문화인들이 많이 산다. 지축동에 사는 전위 예술가 무세중-무나미 부부, ‘전원일기’를 연출한 김한영 PD, 금속공예가 이상구씨, 대금연주가 김평부씨 등이 그들이다. 이 중 김PD는 이승연화백의 경우처럼 매년 여름 마을 음악회를 열어 이웃과 친지들과 친교를 다지는 즐거운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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