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이 생계돕는 김점녀 할머니

“외롭긴, 무슨…”
자식도 없이 35살 이후 오직 혼자인, 거동초차 불편한 김점녀(88)할머니는 “외롭지 않다”고.

김할머니는 벌써 여러 해 자리에 누워지낸다. 누군가 휠체어에 태워 밀어주지 않는다면 햇빛 구경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 ‘멋쟁이 김할머니’는 아침이면 곱게 화장을 한다. 화장품 사는 데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다. “버릇이 돼서 말야.”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입술 연지 색은 “빨간색.”

그러나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김할머니가 그린 빨간색 입술연지는 여기저기 번져있기 일쑤. 이를 닦아주는 건 할머니 집을 드나드는 봉사자들의 몫이다.

저녁 5시 30분쯤. 흰돌마을 김할머니 집 앞에는 어김없이 최씨가 나타난다. 일요일이나 공휴일 상관없이 저녁봉사를 위해 박씨가 김할머니 집을 찾은 지도 벌써 1년여.

박씨는 남아있는 찬밥에 감자를 넣고 푹 끓였다. 물컹하게 삶아낸 배추나물도 곁들였다. 이가 거의 없는 김할머니가 먹을 수 있는 건 무른 반찬뿐이다. 할머니의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죽을 퍼 수저를 들면 박씨가 나물을 올렸다. 손이 떨리는 할머니가 입까지 수저를 가져가기는 한참. 죽을 입주위로 떨어뜨린다. 박씨가 입가를 추스려 준다. 할머니 식사 시간은 1시간 반. 저녁을 먹은 할머니는 다시 누워 식사 내내 눈을 떼지 않았던 텔레비전을 본다.

텔레비전은 할머니의 또다른 벗. 드라마 속에 자신을 끼워넣고 산다. “저 사람말야, 육촌오빠의 딸인데 결혼을 여섯 번 했어.”텔레비전 드라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김할머니 친척이거나 아는 사람이다.
할머니는 엉덩이 걸음으로 방 청소를 한다. 움직이기 힘들어 차고 있는 기저귀도 가능한한 자신의 손으로 빤다. 물론 물기도 제대로 짜지 못하지만 본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해낼려고 한다.

“세수대야 하나 가지고 싸우는 게 싫어.” 김할머니가 양로원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다. 흰돌YMCA복지관, 문촌YWCA복지관, 원당사회복지관, 순애원에서는 이런 생활보호대상의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가정봉사교육’을 한다. 김할머니 집을 찾는 박씨는 “교통비를 받는 유료봉사라 얼굴 내기 싫다”고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한 노인을 4년여 찾아가고 돌봐 가족처럼 지내는 이들도 있다.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숨은 봉사자들이 아직은 곳곳에 많다.
김할머니는 고혈압, 기관지염이 있다. 자궁도 좋지 않다. 찾아오는 자식도 친척도 없다. 그러나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이면 백석성당의 젊은 친구들이 와서 밥을 차려주고, 벗도 해준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면 공공근로 대신 찾아오는 아줌마들과 놀 수 있다. 가끔 청년들이 말벗을 해주겠다고 드나든다. 젊어서부터 다녔던 일산성당의 사무장도 틈틈이 찾아온다.

김할머니는 기억력이 쇠해서 매일 찾아오는 이가 아니면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 항상 곁에 있는 건 안다. 김할머니는 외로울 새가 없다.

직접낳은 피붙이는 없다. 그러나 사회는 김할머니에게 '또 하나의 가족'을 선물해 주었다. 가족은 이렇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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