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중고참의 한국에서 살아남기

“월급 제대로 안주면 농땡이 쳐서 잘리라고 합니다.”
한국생활 7년 차 중국동포 김경숙씨가 불이익을 호소하는 같은 중국동포에게 하는 충고다. “싸워서 얻어라.” 대신 “열심히 일해라.” 김경숙씨가 한국 생활로 ‘중국 갑부’가 된 비결.

이 노하우를 늦게 온 친척과 동포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김경숙씨는 오늘도 바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다음 날도 김씨는 새벽 4시 30분이면 눈을 뜬다. 새벽에 찾는 교회는 김씨에게 ‘자신의 의지’ 다음으로 중요한 의지 처다.

다른 중국동포들에게 일산조선족 복지센터를 소개하고, 한국 생활을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김씨의 몫. 김씨는 이런 일들이 바로 한국 생활 중 고참쯤 되는 자신의 일이라 생각한다.

3백만 원으로 비자를 사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밟은 김씨는 곧 돈을 모아 남편을 부른다. 또 돈을 모아 동생들을 부르고, 시누이도 오고. 이제 남편, 동생 들은 돌아갔다고 하면서도 남동생 내외, 작은아버지, 고모는 또 한국 땅에 있단다. 김씨의 문어발식 친척 끌어 모으기는 끝간데가 없다.

김경숙씨의 큰손 뻗치기는 부산이나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이나 대구에 간 친구들이 글쎄 70만원 받는 게 고작이라잖아. 그래서 백만원 받게 해준다며 불러 올렸지.”
김경숙씨가 자신을 지칭하는 ‘저희’라는 복수형은 많은 조선족을 보듬으려는 무의식의 표현은 아닐런지.

이렇게 화통한 김경숙씨도 9살 이후 만나지 못한 아들 얘기에는 웃음이 사그라든다. 아들은 이제 16살. 찍어서 보낸 사진으로 만나지만“아직도 9살 그 모습으로만 기억된다”고. 그나마 딸은 작년에 산업연수생으로 안산에 와있어 이 주일에 한번씩은 만난다.

김씨는 요사이 쉼 없는 일과 일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시금치 한단으로 일주일 국을 끓여 먹는 일도 없다. 1년에 열흘 남짓이나 쉬었을까. 그 생활도 청산하고,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쉰다. 비록 오래된 아파트 방 한 칸이지만 동서와 친구 셋이서 아파트살이를 한다. 중국에서는 아파트가 세 채인 ‘갑부’다.

고양에 뿌리내린 지 7년. 강남 기사식당에서 일한 4개월을 빼고는 내내 고양에서 살아온 김경숙씨에게 고양은 “제 2의 고향”이란다. “처음에 올 때는 3년만 이 악물고 벌자 했는데….”지금 김씨의 한국 생활 목표는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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