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출신 소녀들의 안타까운 성장일기

감동의 잔상이 남아있는 영화를 텍스트적으로 분석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나에겐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후,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많이 힘들었다. 마음의 허공 속에 떠도는 감정들을 글씨로 또박또박 옮겨 내야하기 때문에.

열 아홉 살과 스무 살의 문턱을 넘어가는 깜찍하고 여린 다섯 명의 소녀들. 각기 너무 다른 캐릭터들이지만, 그녀 또래의 아이들을 참 굵직하면서도 세심하게 잘 분리시켰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로, 하지만 소외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상고 출신의 소녀들.

모두의 목표는 마치 대학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소수이고, 그렇다면 그 나머지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영화 속에 나오는 다섯 명의 소녀들은 사라진 다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과 소녀들이 이동하는 장소들은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쪽 저쪽을 오고가는 고양이는 다섯 명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듯 영화 속의 작은 이동들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물 흐르듯 흘러가고 소녀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성장영화다. 많이 공감할 수 있고, 많이 웃을 수 있는, 또 그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성장영화다. 2001년을 살아가는 스무 살들의 코드를 정확히 읽어냈고, 작품의 완성도도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흥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었지만, 참패다.

왜 그럴까? 요즘의 한국영화 흥행실적을 보면서 많은 의문점을 갖게 된다. 완전히 머리를 비운 상태에서만 가능한 웃음을 선사하는 일련의 영화들은 모두 기존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며 흥행 스코어를 내고 있는 반면, 흥행을 예상한‘고양이를 부탁해’는 참패이다.

왜 그럴까? 일부 영화 잡지에서 ‘조폭 마누라’와 ‘고양이를 부탁해’를 비교하면서, 영화에 대한 진지한 시각을 갖고 있는 예술 영화로 호평을 한 것이 되려 관객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세워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 하나의 요인이라 하겠다.

또한 지금껏 우리는 동서양을 뛰어넘어, 남성위주의 사회 속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흥행신화를 남긴 ‘친구’가 남성들의 끈끈한 우정을 담아냈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우정에 관한 영화였을까? 아직까지도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조폭 마누라’가 신은경이라는 여배우를 앞세워 여성파워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 여성의 본연을 담아낸 영화라 할 수 있는가?

사회의 기존 질서들은 스크린 속에서도 여성들을 뒷전으로 물러나 있게끔 만들었고, 관객들은 지금의 이 사회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듯 아무런 반감이나 의아함 없이 영화를 쫓아갔다.

영화에서 여성은 외향적인 눈요기 꺼리로 사용되기 일수였고, 영웅이 되는 남자들의 악세사리쯤으로 비춰졌으며, 그들의 심리나 내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 없이 넘어가곤 했다. 결국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라 해도 한번쯤은 사회에 의해, 남성 감독들에 의해 걸러지고 왜곡되어 스크린 속에 표현되어진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정말 재능 있는 여성감독의 출현을 기뻐해야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진정한 우정에 관해 얘기하는 여성 성장영화이다. 꿈을 꾸는 소녀들, 그들은 남자만이 꿈을 꾼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통념들을 뒤흔들고 우리에게 살포시 뛰어들었다. 마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작고 귀여운 고양이처럼 말이다.

나도 이제 열 아홉을 지나 스무 살의 문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사회에 뛰어든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과 각오와 의무를 수반한다. 하지만 오늘 잠시 내가 놓치고 달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뒤돌아 봐야겠다. 이 땅에서 고양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이상 서글프지 않게 살포시 세상으로 뛰어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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