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 시

10여년 전, CD-RW기가 흔치 않았을 때다. 다니던 회사에서 매달 누적되는 막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홍대 앞 골목 어딘가까지 가서 씨디 백업을 받아오곤 했다. 그때 공씨디가 대략 만 원, 백업비가 이만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6~7만 원에 CD-RW기를, 3~5백 원에 공씨디를 구입할 수 있는 걸 비교해 보면 상상이 안 가는 시절이다. 그런데 그때 공씨디 한 장에 만 원이 넘어가던 땐 씨디에 지금처럼 싸구려 염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반사율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년 전 후배가 구워준 Bad Company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 컴퓨터에 씨디를 넣고 재생시키자 자꾸만 리드 에러 메세지가 떴다. 원인을 알아보니 염료가 변해 그럴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조립품 컴퓨터를 살 때 업체 사장에게 애걸해 복제해 놓은 프로그램들도 필요할 때 씨디를 넣고 셋업시키면 안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아무튼 만능이고 반영구적이라 믿었던 디지털문명은 이렇듯 종종 배신감을 안겨주곤 한다. 앞으로 어떤 디지털 저장장치가 개발돼 씨디롬이 이젠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5.25인치와 같은 길을 걸을지 모른다. 오랜 후에 먼지 쌓인 씨디롬을 꺼내 그곳에 담긴 정보와 추억을 꺼내본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요즘 디지털카메라의 유행으로 수많은 이미지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디지털 사진은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다. 무형의 데이터란 그런 것이다.

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대안처럼 전자책과 인터넷문학 등을 거론하고 문학의 보수성을 타파해야 살아남을 것처럼 얘기한다. 오늘날 영상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는 문학도 구체적인 문장보다는 문장의 공간을 이미지로 채우고 음악 같은 다른 장르를 삽입해 함께 즐기는 일이 흔해졌다.

 그러나 정통문학은 전자책과 인터넷문학이 갖지 못한 문학 고유만이 가진 즐거움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모든 영양분이 함축된 한 알의 알약으로 허기를 채우지 않고 맛과 향, 색을 음미하며 천천히 음식을 먹는 건강식과 같다.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로만 존재하는 어떤 이유가 있다. 디지털게이지를 장착했던 고급승용차들이 모두 숫자를 버리고 다시 바늘로 돌아간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젠 오히려 아날로그를 재발견하고 흉내낸 탈디지털 레트로 제품이 각광을 받을 정도다.

디지털시대의 문학의 위기는 영상의 위력 때문도, 매체의 변화 때문도 아니다. 디지털시대의 문학의 위기는 문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의 상상력과 이미지를 스스로 포기한 데서 온다. 문학은 영상이 전달할 수 없는 질감의 전혀 다른 환타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물론 문학도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문학 고유의 기능과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디지털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화한다 해도 책은 책대로 존재하고 문학은 문학대로 존재할 것이며, 오히려 영화나 TV 등 다른 매체에 의해서 재생산되면서 거꾸로 문학과 출판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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