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軌)는 바퀴자국이 난 길을 뜻하는 한자이다. 앞 수레의 바퀴자국을 뒷 수레가 따라가므로 본보기라는 뜻이 더하여졌다. 또한 수레바퀴의 폭이 약 여덟 자[八尺]로 엄격히 정하여져 있었기 때문에 바뀔 수 없는 법칙이란 어의를 갖게도 되었다.

‘중용(中庸)’의 ‘수레바퀴의 폭이 같다(車同軌)<28章>’는 말이 바로 그런 예이다. 바퀴의 폭은 길의 폭을 결정 지우며, 바퀴의 폭은 수레 용량을 결정짓기에 세상을 다스리는데 궤법(軌法)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 궤법은 천하의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었으니 설혹 권력과 돈이 많더라도 궤(軌)를 어긴 큰 수레를 탈수는 없었다. 궤도(軌道)이탈이란 곧 더불어 살고자 함을 포기하는 패륜적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궤법(軌法)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궤도를 이탈하는 게 자신을 과시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다수 나오게 되었다.

혈세로 운영되는 자치단체장 관용차를 대형으로 바꾸는 것도 바로 이러한 착각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권위는 차에 있는 게 아니라 타는 사람에 달려 있음을 왜 모를까?
<김백호·회산서당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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