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없는 중학교

이곳은 중학교부터 담임 선생님이 없다. 이 교실 저 교실 과목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한다. 담임 대신 카운슬러가 있어 아이들을 상담하거나 교육계획을 상의하게 돼있다.
그런데 카운슬러는 아이들과 수업을 하진 않는다. 결국 아이들이 찾아가서 상담을 하거나 각 과목 선생님을 통해야만 그 아이를 파악할 수가 있는 식이다.
나는 이런 제도가 우리나라의 담임 제도보다 오히려 위험천만일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적이나 지각과 같은 결과물을 가지고 아이들을 판단할 우려가 많다. 이곳 학부모들은 맞벌이를 하려면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하고, 오히려 중학교 이상이 되면 집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게 훨씬 현명할지 모른다고 얘기하곤 한다. 중학생만 되면 엄마가 다소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과는 오히려 역현상일까. 그만큼 중학교 이상이 되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확률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콘돔 나눠 주는 성교육

자유로운 성문화도 부모가 어찌하기 힘든 또 다른 문제이다.
미국은 고등학생 때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따고 직접 운전하는 학생들도 많다. 주위에 한 한국인 가정은 딸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얌전한 편인데다 엄마가 일하지 않고 아이들만 철저히 돌보는 집이었다.
아이가 학교수업마치면 곧장 차에 태워 데려오고 밖으로 내돌리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이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다. 몸이 좀 좋아지기에 엄마는 체중이 불었나 생각하고 감히 임신했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점심시간에 남자친구 차안에서 했단다. 그러니 엄마가 아무리 도사라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임신 5개월 째로 이미 늦어있었다. 미국에는 낙태가 불법이라 한국까지 가서 수술해보려 했으나 의사가 해줄 수는 있는데 이 애가 결혼 후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할 수 없다고 서류를 디밀며 서명해달라는 바람에 차마 못하고 아이를 낳게 해 엄마가 늦동이라고 이웃에 속이고 키우고 있다는 충격적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내 아이가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살며 친구들이 자유로이 하는 성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학교에선 성행위에 대한 처벌은 할 수 없고 성교육 시간에 콘돔을 나눠주며 할 때는 반드시 이용하라고 하는 식이다.

각종사고 위험에 던져진 아이들

어린 나이에 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위험이 도사린다.
무서운 게 없을 나이니 운전이 안전할 수만은 없다.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어 갔다가 엄청 놀랐다. 그 학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5위안에 드는 좋은 학교라고 해 조용한 분위기를 상상했었다. 근데 라디오 볼륨을 떠나가라 높여 운전해대고 넓은 주차장 공간에서 거리낌없이 키스해대고 규정 속도를 벗어나가며 질주하는 차들 속에서 내가 고등학교에 와 있는 게 맞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 캠퍼스를 들른 것 같았다.
미국은 초등학교만 규모가 작지 중고등학교만 되면 학교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한 도시에 초등학교가 5개 정도면 고등학교가 하나있는 정도이다. 그러니 그 큰 규모에 자유분방한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을 집에 있는 부모가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모두 내 아이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운전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아이들 수도 만만찮다.

한국인으로써 정체성 확립 해야

여러 다른 인종이 모여 사니 왕따 문제라든가 타 인종에 대한 폭력사건도 많다.
문화가 다르다는 건 자칫 서로 적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여기서 태어난 한국아이도 고등학교에 가면 자기네 민족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학 오거나 커서 이민을 오는 아이의 경우엔 더하다. 서로 정서가 통하니 잘 통하는 친구끼리 어울리는 경우는 당연한 현상일 게다.
근데 그렇게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면 다른 그룹에 대한 오해가 생기거나 타민족을 경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서로 폭력이 오고가는 경우도 있다. 다른 민족들과 조화롭게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도 또 다른 숙제거리다. 이 곳 한국아이들을 굳이 구분해 보자면 세 그룹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태어나 완전히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미국인이나 진배없는 아이들, 뒤늦게 이민 와 미국식도 아닌 것이 한국식도 아닌 것이 어정쩡한 아이들,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아이들. 자기나라에 대한 정체성확립이 없이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사회에서 조화롭기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 사고방식에만 익숙한 이민 1세 부모로선 내 아이의 정체성확립에 도움을 주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재숙씨는 2년 전까지 후곡마을에 살았다. 남편이 직장을 미국으로 옮기면서 이민을 선택했다. 현재 LA에 살면서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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