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느리게’ 키우는 ‘서당’

갑자기 불이 꺼쪘다.‘명상시간’.
벅쩍하던 아이들 소리가 어둠 속에 스며들고, 대신 피리와 가야금 소린가? 좌선한 아이들 모습만 빨간 난로 앞에 희뭇하다.
갑자기 불이 켜졌다.
“박수 10번. 세게 칠수록 힘을 모아준다.”
“딱딱딱……”
“자, 이젠 도인체조.”
두 손에 힘을 모아 배 가운데, 왼쪽, 오른쪽, 옆구리, 가슴, 팔, 엉덩이, 대퇴부를 맘껏 친다….
“컥컥”
“터지겠다”

오늘 이산(理山)서당을 시작하는 소리다. 이산서당은 2000년 9월 박영규 훈장이 시작. 이제 1년을 훌쩍 넘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대학 졸업까지 “서당 아이로 남겠다”고 마음 도장을 찍는다. 그래서 박훈장은 마음놓고 아이들을 느리게 데리고 갈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수학 50쪽에서 70쪽까지’라는 얽매임이 없다. 물론 수학 과목도 없다.

‘서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자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오산. 이산서
당의 교재는 대부분 박훈장의 책들이다. 여기서 박훈장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라는 잘 팔리는 책을 낸 작가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생각의 정복자들’이라는 책은 철학 교재다. 아이들은 탈레스도 되고, 아이스토렐레스도 된다. 역사시간에는 ‘특별한 한국인’을 읽으며 고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때때로 ‘달마에서 성철까지’로 선담을 나눈다. 한달에 한번 시를 써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고등학생들은 요사이 ‘소설 이어쓰기’작업이 한창이다.

이산서당에 오는 아이들은 초딩 6학년 12명과 중딩이 13명, 고딩이 6명이다. 매주 한번 7시 반쯤이면 대화동 서당에 간다. 수학도 영어도 과학도 없는 방석에 앉아 철학과 역사와 선담을 한다. “배운다 기보다는 한다.”

남들 보기에 이산서당은‘방과후 교실’. 하지만 박훈장은 말한다. 아이들 하나하나 가슴에 ‘가치관’이라는 뿌리를 내리는 ‘학교 보다 더 중요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오늘은 초딩들이 모이는 화요일.
‘특별한 한국인’으로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 채 서당에 온다. 모든 게 훈장님 맘이다. 종수가 읽는다.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내용인즉, 긴 역사 속에서 본다면 망하지 않는 나라도 잠시 동안 남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도 없다. 영국도 로마의 지배를 미국도 영국의 식민지 였다. 일본의 45년 지배 때문에 부끄러워 할 일도 속 앓이 할 일도 아니다.

3쪽에 걸친 이 이야기를 풀기 위해 광개토왕부터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까지 넘나든다. 박훈장은 못생긴(?) 세계지도를 여러 번 그려댄다. 시나위 반도와 아메리카, 극동의 한국까지.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고 세계 중심으로 나설려면?”
“돈벌어야죠.”
“공부해야 하나?”
“통일!”
우후죽순으로 떨어지는 대답들 속에 해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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