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영/높푸른고양21협의회 사무국장

둔촌동 습지를 지켜낸 주민들
주거가치를 높이는 결실 거둬

고봉산 습지보전을 위한 고양 시민과 시의 노력이 이제 성과를 얻는 듯하다.. 고양시와 주택공사가 이 지역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봉산 자락 1만3천평 중 4천평을 시가 매입해 환경관련 시설로 활용하고 나머지 9천평을 습지로 보전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높푸른고양21협의회는 고봉산 습지의 보전과 바람직한 관리를 위해 고봉산 보전대책위원 및 시의원들과 함께 서울시의 습지보전지역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강동구 둔촌동 습지와 고덕동 한강변 생태복원지 등 두 곳을 견학했는데 특히 둔촌동 습지는 우리와 비교할 점이 많았다.

둔촌동 습지는 주공아파트 4단지 동쪽에 있는 약 1,500평 규모의 작은 습지다. 규모로만 보자면 불도저로 하루만 밀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손바닥만(?) 하지만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솔부엉이가 서식하고, 오리나무를 비롯해 무려 192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습지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경관은 아파트 주거환경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어 이제는 주민 스스로 이곳을 더욱 소중한 보배처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한다.

둔촌동 습지에는 습지성 자생식물 72종을 비롯해 총 192종의 식물이 자생, 생물다양성이 높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습지 주변의 녹지도 8등급 지역이 30%를 넘는 숲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 산림은 습지에 수분을 공급, 둔촌동 습지의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둔촌동 습지는 학교도 가깝고 교통여건이 좋아 개발 유혹이 많았다. 그러나 이곳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주민들이 결성한 ‘습지를 가구는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습지를 가구는 사람들’은 96년 이곳에 폭 12m의 도로를 내겠다는 강동구의 공람공고를 보고 둔촌동 주공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긴급하게 결성됐다. 이들은 우선 서울시립대에 생태계 조사를 요청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소중한 습지 생태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으나 도로개설 계획은 계속 추진됐다.

생태계조사보고서를 들고 강동구, 서울시, 환경부까지 뛰어다녔지만 이곳의 보존을 위해 선뜻 나서는 데는 없었고 공무원들의 무관심에 지쳐가던 1999년 10월, 뒤늦게나마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이뤄졌다. 시민대표로부터 습지의 중요성을 들은 서울시장의 지시에 의해 예산 9억원을 들여 습지 일대의 토지를 일부 매입하는 한편,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대를 보호·감시하도록 했다. 건설이라는 이름하에 거의 사라질 뻔했던 조그마한 습지가 아파트 주민들에 의해 보전되고 복원되면서 이제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보배로운 존재로 사랑받게 된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해떨어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내다보노라니 고봉산 습지보전이 한창 시끄럽던 지난해 “그곳이 무슨 습지냐?”고 내게 반박하듯 물어오던 어느 공무원이 문득 되살아났다. 비록 작더라도 지역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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