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호/극작가

부상 없이 시상한 시문화상 가난한 예술인에겐 허탈하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당장 물감이 없다. 어렵게 물감이 준비되었지만 이제는 종이가 없다. 굶주림에 지쳐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며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내는 입술을 깨문다. 그림을 완성해서 빵을 구해올 참이다. 최소한 오늘 저녁은 가장으로서의 제법 근사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자 몇 번이고 다짐해 본다.

그러나 세상의 어둠은 때로 가혹하기까지 한다. 그가 캔버스를 들고 거리에 나갔을 때에는 음산한 눈발 속에서 세상의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따뜻하게 맞아주던 빵집 아주머니도 벌써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동네를 괜히 서성거리던 사내, 허기에 지친 그의 눈에 가로등은 그대로 부풀어 오른 빵이었다. 알맞게 부풀어 오른 불빛이 따뜻한 빵으로 피어오르는 바로 그 순간, 정말 빵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는 험난한 사막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참이다.

그야말로 지고지순한 순간이란 무엇인가,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는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야 말로 창녀가 아니었을까. 빵만 곁에 있어 준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갈 수 있는 벼락이나 홍수와 같은 정신적 열망! 아, 그러나 황제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에게 최소한의 은전만 베풀었다면 그는 이토록 시간을 탕진하며 빵과 싸우지 않았으련만.

우리들에게 빵이란 대체 무엇인가. 잠시 위장을 따뜻한 행복으로 채워준 다음, 약간의 혈액과 배설로 변해 버릴 하찮은 그것, 사내는 눈발 속에서 중얼거린다. 계란은 온도를 받으면 병아리가 되지만, 돌멩이는 아무리 열을 가해도 병아리가 되지 않는다고.

아무려면 어떤가, 그런 모순과 오해 속에서도 역사는 당당하게 굴러왔고 또 열심히 굴러갈 것이므로, 그러나 우리들의 신념은 굶주림 앞에서 마비되는 법, 예술가적 자존 또한 추위 앞에서는 결국 무디어지기 쉽지 않은가.

얼마 전 제12회 고양시 문화상 시상식이 있었다. 우연하게 알게 되었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수상자의 부상이 일체 없다는 것이었다. 고양시가 지역문화예술의 꽃이며, 관문임을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미래지향적 지역문화예술의 최첨단 요람지로 우뚝 서기까지 그들의 숨은 노력과 땀의 결실을 상상하면 참으로 허탈하기만 하다. 캠퍼스를 들고 밤거리에서 빵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고흐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문화예술은 지원을 먹고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고 했다. 가난한 문화예술인의 숨은 공로가 공정한 선거문화를 흐려놓을 수 있는지, 상상이나 파먹고 사는 나에게는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는 인색한 공식이다. 

예술인에게서 상상은 빵과 같다. 어리석은 황제로부터 최소한의 은전을 갈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상상물을 정직한 빵과 바꾸려는 단순하고 천진한 의지를 아는가. 하지만 그 지고지순한 땀과 노력의 결과에는 희미하게 지워져 있는 쓸쓸한 현실뿐이다. 부디 배고픈 이 땅의 고흐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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