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험설계사의 고백>

보험설계사 J씨.

약간 마른 몸집에 의외로 너무 말이 없었다.

건축업을 하던 남편은 생활력 강한 사람이었다. 사업도 그런 대로 잘 됐었다.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 심장마비 때문이었다. 벌써 15년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홀시어머니와 일곱살, 아홉살 두 아들만 남았고 당시 친정이나 시댁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별다른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길 겨를 없이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가 책을 팔러 다녔고 메추리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보험설계사가 된 건 아는 사람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 일이 '좋다, 싫다'란 생각에 앞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하루빨리 일자리를 얻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다.

워낙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던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보험설계사란 직업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려워 수십번, 수백번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차편이 없어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일이 허다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오를 정도로...

J씨가 아는 사람 중에는 너무 많이 걸어 다녀 다리뼈가 닳거나 아기를 유산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직업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처음엔 많이도 울었다.

보험 아줌마는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였고 나이 어린 소장이 실적 쌓지 못했다고 욕지거리하는 것도 참았다. 아이들 때문이었으리라. 별 말썽없이 잘 자라 주는 아이들이 그녀에겐 가장 큰 의지가 되었으리라.

이제 J씨는 십여년을 일해 온 보험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보험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섰고 그녀처럼 나이많은 사람은 이제 퇴출 0순위에 들어가게 됐다. 그동안 뼈빠지게 일해 왔건만 이제 필요없으니 나가라고 강요하는 것이 영 서글프다.

일을 그만 두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고 다른 일을 찾으려 해도 이제 오십 가까이 된 그녀에게 세상은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 역시 모험인 것이다.

많은 세월을 보험 상품을 팔러 돌아다닌 덕에 그녀는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모아 둔 돈도 없다. 그저 빚 없이 이제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를 돌보고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기적같기만 하다.

그래서 그녀는 별다른 욕심이 없다. 하루하루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J씨는 보험회사에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보험설계사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하는 일에 비해 그 급여가 매우 적어 생활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모집수당같이 보험설계사가 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 회사가 돌려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촬영을 간곡히 부탁하는 기자의 말을 거듭 사양하며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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