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못나가요"

이런저런 이유에서 고양시에는 여성운전자가 많다. 특히 남자들이 도시를 비우고 난 낮 시간에는 더 많다. 여성운전자들에게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해답은 간단한 곳에 있다. 여자들이 운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 “도로가 넓고 상대적으로 차량이 적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는 일이 서울처럼 부담스럽지 않아요”“아파트 단지를 보고 운전을 하는데 목적지 찾기가 쉬워요”“상대적으로 운전하는 여자들이 많아 동지의식 때문인지 도로를 달릴 때 좀 더 편안한 것 같아요”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도 한다.

고양시에 여성운전자가 많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신조어 ‘고양면허’‘일산면허’가 있다. 이 면허를 소지한 이들은 ‘장롱면허’ 신세를 면하고 고양시 곳곳을 누빈다. 일명 고양면허가 생겨난 이유는 신도시의 도로가 넓어 주차하기 쉬웠고, 다른 운전자의 눈치를 덜 살피고 주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돼가고 있다. 차량증가로 주차공간이 줄어들었고, 주행할 때 경적이 울려대는 차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 한 남성운전자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차도 많이 늘었는데 xxx들이 너도나도 차를 몰고 나오니 차가 더 막히네. 저~저~ 진작에 3차선으로 들어서야지 거기서 어떻게 우회전을 한다고…. 저러니 차량 흐름이 방해를 받지”라며 여성운전자를 면박한다.

하지만 ‘고양면허’를 소지한 여성들은 이런 남자들의 면박에도 꿋꿋하다. “도로가 남자들만의 것이냐”“시내에서 뭐가 그리 급하냐”“속도를 즐기고 싶으면 고속도로로 나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양면허 소지자들의 이런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교통문화라면 고양시는 ‘느리게·천천히·여유롭게’ 안전 운전을 즐기는 도시가 되지는 않을지….

차를 몰고 고양시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허시내(가명·대화동·29) 씨는 시내 운전만큼은 자신만의 운전 스타일을 고집한다. 정당한 잘못을 지적한다면 듣겠지만 괜한 우월감에 여자운전자를 없신여기는 남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처음 운전할 땐 주위에서 경적을 울리면 어쩔 줄을 몰았어요. 큰 잘못도 아닌데 상소리를 하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보면 괜히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기도 했죠. 하지만 이젠 안 그래요.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려도 내가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출발을 해요. 여전히 남자들은 저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지나가지만요.”

고양시 여성운전자들이 모두 ‘고양면허’ 소지자는 아니다. ‘남편 출퇴근 면허’‘대리운전 면허’‘가끔 서울 출장 면허’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남편 출근을 위해 매일 아침 백마역까지가 주된 주행코스인 이정화(가명·장항동·41) 씨는 전형적인 ‘남편 출퇴근 면허’ 소지자. 또 한선옥(가명·화정동·34)는 ‘대리운전 면허’ 소지자다. “남편에 저녁에 술을 한잔 마시게 되면 여지없이 대리운전 호출을 받게 된다”고.

행신동에 살고 있는 이소라(가명·41) 씨는 서울로 가끔 차를 끌고 나간다. 하지만 이내 후회한단다. “서울에 차를 끌고 나갔다오면 녹초가 되요. 고양시에서 운전할 때처럼 편안하지 못하거든요. 가급적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급한 일이 있으면 차를 가지고 가게 되요. 그리곤 금새 후회하는 거죠 뭐.”

인구 80만명에 차량 보유대수 21만인 고양시. 차량 증가는 고양면허 소지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 만큼 주차공간이 줄어 주차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성운전자가 줄어들일 또한 아니다. 운전은 하면 느는 것. 이미 남성운전자 못지 않은 ‘여성 베스트 드라이버’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직업 여성운전자도 자주 눈에 띤다.

문제는 운전하는 사람이 ‘여자인가, 남자인가’가 아니다. ‘내가 양보운전을 하겠다. 보행자를 생각하는 시내 주행을 하겠다. 서두르기보다는 안전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운전자세가 고양시의 교통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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