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밑, 그러니까 2006년 12월 16일 도쿄 상공회의소에 한국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북핵과 같은 정치적인 이슈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그마한 노년의 여류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다름 아닌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다. 15년 완주한 끝에 15권의 대작을 완성시킨 그녀를 한국 기자들이 가만히 내두지 않았다.

로마인과 로마제국의 어떤 점이 동방의 이방인을 유혹했는가. 나이 일흔에도 눈빛 형형한 그녀는 주저 없이 말한다. “로마인은 포용했다. 관용적이었고 개방적이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더 뛰어나면 그들에게 큰 일을 맡겼고 지도자로 삼기도 했다. 민족이 다르든 얼굴이 다르든 공생이 가능했던 게 로마문명이다.”

준비에만 20년, 집필에 다시 15년이 걸린『로마인 이야기』, 이 대작을 마친 소감으로 그녀는 말한다. “로마인들을 좋아한다. 그들을 보내며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갈 때 냉정하게, 혹은 눈물 흘리면서 보내느냐의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보내겠지만, 민족이라면 다르다. 그들의 종말을 냉정하게 보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해서 이제야 방학을 맞은 셈이라며 올 고희의 노작가는 미소 짓는다.

정해년 새해, 그러니까 2007년 1월 2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 기자들이 북적거렸다. 한국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출간 전부터 숱한 공방을 일으킨 『호모 엑세쿠탄스』의 저자 이문열을 보기 위함이다.

기자는 “호모 엑세쿠탄스”가 아니라 다짜고짜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묻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작가는 응수한다. “내가 정치적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정치적 경향이 보수 반동적이기 때문에 나를 나무란 것으로 보인다. 맞다. 나는 보수이고 우파다. 남이 규정한 것도 있고 나 스스로 감수한 것도 있다. 내가 보수라는 건 이미 오래전에 결정난 것 아니냐. 80년대엔 아니라고 저항했던 적이 있다. 그라나 지금은 기꺼이 보수란 소리를 듣겠다. 보수란 짐을 지고 가겠다. 나같이 미련스러운 사람도 있어야 무언가 되는게 아니겠느냐.”

작가는 인간의 구원 문제를 성찰한 『사람의 아들』후속으로 “처형하는 인간”을 기획 집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간담회에서 피로한 모습으로 당부한다. “나는 재미 있는 소설을 한권 썼다. 소설로 읽어달라.” 그 때문인지 작가는 책 서문에서 적는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놓고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가 되었다.” 간담회에서 작가나 기자나 관심은 온통 현실 정치였다. 왜 인간을 처형자로서 규정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와 답변은 없었다.

지난 세모 로마에서 모국으로 돌아온 시오노 나나미는 머리가 텅빈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곧 로마로 돌아가 진정한 휴가를 갖고 싶다고 했다. 새해 벽두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이문열도 멀지 않아 미국 동부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걸출작 『사람의 아들』의 작가 이문열,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광경을 시오노 나나미가 보았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관용과 공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라이기에, 대통령 “제정신 논쟁”이 대낮에 벌어지는 나라이기에 이해할만하다고 했을까.

일본과 한국, 그 차이를 세모와 새해에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할 수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현복(본지편집위원 한양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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