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보존과 경협, 두마리 토끼를 잡는 법

지난 여름 큰비가 온 후 노루 한 마리가 내가 경작하는 가좌동 논에 나타났다. 자유로를 달리다 철책 넘어 한강하구 갈대밭으로 우연히 목격하곤 했던 놈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용케 철책과 자유로 건너 장월(獐越-노루메 건너 동네)을 지나 장산(獐山-노루메)을 거쳐 대화마을과 가좌마을 아파트숲 중간 논까지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초교시절 한강 하구벌에서 벌거숭이로 급우들과 빠른 물살을 따라 수영을 하곤 했다. 어떤 이는 한강을 헤엄쳐 김포로 건너가 과일서리를 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른 봄  풀이 돋기 전에 방게를 잡아야 한다며 떼를 지어 한강하구 갯벌을 헤집고 다녔다. 당시 철책은 없었고 단지 트럭한대 다닐 정도의 둑방을 넘으면 되었다. 그 둑은 일제 동양척식회사 등이 산미증산계획으로 농경지 확보를 위해 막은 것이다. 둑 안쪽으로 안전답을 확보한 일제는 소작농을 이주시켜 마을을 만들었고, 농민운동사에 남은 농민쟁의가 있었던 역사적 비운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후 남북 긴장상황이 극에 달으면서 둑너머로 야트막한 삼각 철조망이 쳐졌다. 구사단의 노장군이 한강하구로 대롱을 물고 침투한 공비를 사살했다고 주가를 올리고 더욱 철조망이 높아지더니,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이쪽 사정에 밝았던지 자유로를 건설하여 감히 강쪽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 되었다.  


이 같은 분단과 냉정의 상징인 철책선이 일부나마 철거된다고 한다. 고양, 파주 군당국이 이미 합의를 하고 세부일정을 논의하기고 했단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환경단체는 생태공원 운운하지만 개발업자 의도된 기획으로 대안 없는 철거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강하구는 태백산맥으로부터 한강물을 따라 토사가 내려오고 서해로부터 조류가 밀어 붙여 퇴적된 갯벌과 그 언저리는 갈대밭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곳이다. 연산군의 소거령 시절을 제외하면 주민과 노루와 철새와 온갖 어류가 어우러진 공유의 땅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제방둑을 쌓아 갈대를 밀고 안전답을 확보 식민수탈을 하였다. 이후 일반인을 출입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권력자들은 농경지를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농민을 등에 업고 군과 협의 둑 넘어로 농경지를 확대해 왔다. 이는 십년을 주기로 벌 형태가 순환하는 자연적 퇴적 침식작용을 거슬러 유속을 막아 홍수를 유발하기도 했다. 자유로 역시 신도시 건설이라는 개발 광풍에 놓여지고 다시 제2자유로 건설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한강쪽 갯벌과 갈대밭은 일제국주의, 분단과 냉전, 개발이 금단의 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장벽으로 둑넘어 한강하구가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생태계가 잘 보전되었으니 슬프나마 20세기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남북화해의 물결 속에 흉물은 철거되어 좋지만 또 다시 역사에서 본바와 같이 엄습한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우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잘 지켜야할 당위성은 분명한데 생태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일전에 상해도심을 흐르는 항포강에 주야장천 화물선이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무수히 오가는 광경을 보고 중국 경제성장 엔진을 보는듯했다. 역시 라인강을 거스르는 대형 화물선을 보고 한강의 운하를 상상해 보았다. 황석영이 쓴 장길산에서 보듯이 옛 한강 하구는 삼남의 배가 강화를 거슬러 삼도품을 지나 이산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와 송파나루를 가는 주 해운의 통로임을 알 수 있다. 행주나루가 어찌 물동량이 많고 번화했는지는 100여년전 고양시에서 최초로 교회와 성당이 세워졌음으로 증명하고도 남는다. 언더우드는 한강운하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고양시 선교의 교두보로 행주나루를 선택했다고 기록에 남기고 있다.  현재 남북당국은 한강하구 개발협의를 해놓고 정치적 결단만을 남겨둔 상태다. 건설 토목족은 벌써 수도권의 골재난을 해결할 유일한 비상구라고 환영한다.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옛 해운을 되살리겠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생태계 파괴가 우려 된다며 진퇴양난에 빠진 경인운하 건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남북경협은 대세이고 그 중심축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하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생태계보존과 경협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심학산 정상에서 석양을 보며 라인강이나 상해 항포강에서 본 줄이은 화물선을 보는 것도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논에 왔던 노루가 별 탈 없이 강변 갈대숲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까.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출현한다고 하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은 오히려 숲이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보고도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개발은 정말 꿈이란 말인가.

/윤주한  본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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