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 영

겨울방학을 틈 타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우리에겐 영화 킬링필드로 기억되는 캄보디아는 독재자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군이 나라를 공산화한 후 농업적 공산주의사회를 주창하면서 도시에 있던 수많은 지식인과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으로 잘 알려진 나라다.  내심 아까운 돈 버리면서 이런 못사는 나라를 구경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맘에 기대는 없었지만,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 사원이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과 국가의 방치로 문 닫게 될 것이라는 말에 더 늦기 전에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호기심으로 여행을 결심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평균 2일에 한 번 출발한다는 시엠립공항 도착 비행기는 한국 사람들로 붐볐다. 나중에 현지 안내자의 설명으로 알았지만 방학기간 중에는 관광객의 거의 대부분이 선생님들이란다.


역시 앙코르와트는 명성만큼이나 대단한 유적임에 틀림이 없었다. 사원 꼭대기를 네 발로 기어오르면서 이런 세계문화유산을 눈으로만 보게 할 것이지 나 같은 여행객들에게 사원 꼭대기를 발로 밟고 기어오르게 하다니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했지만 본전 생각에 사원 구석구석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오전 내내 진행된 안내원의 장황한 설명에 고분고분하지 못한 동료 몇몇이서 대열을 이탈하여 한가로이 사원의 원경을 감상할 겸 주변 돌무더기에 앉아 있는데 맨발에 남루한 옷차림의 아이들 한 무리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원 달러”하면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반사적으로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참을 외면해보기도 했지만 떨어질 줄 모르고 달라붙는 아이들의 집요함과 직업의식에서 발동한 동정심으로 결국 그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아니 이게 웬 일? 또 다른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타나서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닌가. 주면 또 다른 아이들이 달려든다는 한 여행 동료의 권고에 따라 결국 우리는 내내 이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차갑게 외면하고 말았다. 


오전 관광을 마치고 버스 안에서 우리 얘기가 화제가 되었다.  현지 여행 안내원에 의하면, 의식 있는 캄보디아인의 요청은 절대로 이 아이들에게 원 달러를 주지 말라. 이 아이들에게 원 달러를 주는 것은 캄보디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이어진 안내원의 보충설명으로는 캄보디아 교사의 월급은 대략 40달러 정도인데 1달러면 푸짐한 식사를 두 끼나 할 수 있는 큰돈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유적지 주변을 맴돌면서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면 웬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수입이 더 낫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는 안 보내고 관광지 구걸로 내몬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알량한 동정심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그리곤 이어 목격한 톤레삽 호숫가 수상마을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오버랩 되면서 캄보디아 여행 내내 우리의 지난 아픈 기억들을 떠올려야 했다.  미군 병사에게  “헬로우, 짭짭”하던 어린 날의 씁쓸한 추억들을. 


과연 이 아이들에게 행복은 무엇이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을까?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꿈은 무엇일까?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세계 일류의 글로벌 인재를 꿈꾸면서 밤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나마 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도 된다.  솔직히 아이들의 지나친 명품 집착에 부모 허리가 휘기도 하지만.


얼마 전 영국의 어떤 단체가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 오세아니아 군도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1위, 우리나라는 102위, 영국 108위, 캐나다 111위, 프랑스 129위, 미국 150위였다. 이 결과를 보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더 행복지수가 높다는 기괴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 사람들의 표정은 옆에 잘 사는 나라 태국 국민들보다 더 밝고 평화로워 보였다. 1달러면 온 식구의 하루 끼니가 해결되니 말이다. 원 달러의 행복이랄까?


인류의 역사는 부의 창출의 역사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지금의 지식정보화사회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식민지, 지구 오염 등 수많은 비극을 연출하면서 인간 욕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욕망을 선동하고 부를 추구하는 문화가 과연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까?  아니면 가난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에 머무를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는 어디쯤 있을까?
/고양 흥도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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