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 책읽기 - 천둥거인

사람들이 개명을 할 때는 각오가 새로운 법이다. 미래를 향한 긴 호흡을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출발점에 서기 때문이다. 좋은 우리 책으로 독자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쌓아가던 ‘돌베개어린이’가 작년 5월에 ‘천둥거인’으로 거듭났다. 책을 만드는 이들도 그대로이고, 출판 방향에도 큰 변화가 없으면서 과감히 출판사 이름을 바꾼 이유가 뭘까? 천둥거인을 찾아 그들이 생각하는 책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김선주 기자/사진·황영철 기자

1999년 돌베개어린이로 출발한 천둥거인은 지난 8년간 37권의 책을 출판했다. 최근 들어 출판된 책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1년에 1권, 하물며 어느 해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못하기도 했다. ‘대량화’와 ‘스피드’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현 세태에 비춰보면 당혹스러운 수치다. 그러나 정작 책을 만들어가는 여섯 명의 천둥거인에게서는 조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 개구리논을 만든 지은이와 이곳을 즐겨찾는 아이들의 이야기 <개구리논으로 오세요>. 개구리를 비롯한 동식물의 생태와 자연체험활동이 어우러진 그림책이다.
천둥거인이 출간한 37권의 책에는 번역서는 달랑 2권이다. 국내 창작품을 지독히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검증된 해외작품을 번역해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월한 길을 지양하고 국내창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묻는 물음에 천둥거인 문승연 대표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못박는다. 문 대표는 “유아나 어린이책에는 그림의 분량이 많은데,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시각적인 것은 주변 가까운 것으로부터 또 우리 정서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권의 번역서인 <둥!>과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부침> 모두 <나의 크레용>으로 유명한 조신타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어린이 심성을 건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어린이의 튼튼한 본성에 맞는 즐거운 책’을 만들고자 하는 천둥거인의 뜻과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 대표는 “우리는 책을 통해 어린이의 성장을 유도하기 이전에 어린이 내면에 힘이 있다는 전제로 책을 만들고 있다”고 전한다.

돌베개어린이 시절 가장 먼저 출간된 <아기 그림책> 시리즈 세 권은 1살부터 3살의

▲ 우리 몸의 구멍들을 놀이처럼 차례차례 보여주면서 각 기관의 생김새와 하는 일을 알려주는 <우리 몸의 구멍>은 천둥거인 설립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는 스터디셀러다.
유아의 연령별 특성과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효과적으로 구성한 책이다. 아이와 함께 노래하듯 리듬감 있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여러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하여 다양한 재료와 표현방법을 통해 다채로운 시각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천둥거인의 저력을 과시한 책은 이듬해인 2000년 출판된 <우리 몸의 구멍>이다. <우리 몸의 구멍>은 입, 코, 귀, 눈, 항문, 배꼽 등 우리 몸의 주요 기관들의 유기적 연결성과 각각의 기능을 '구멍'이라는 매개로 풀어나가는 독특한 책이다. 우리 몸에 대해 놀이를 하듯이 즐겁게 알게 되는 이 책은 어린이도서연구회 권장도서, 2002한우리가 뽑은 좋은 책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우수도서로 인정받기도 했다.

천둥거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중견작가보다는 개성있고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데 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성공한 지 1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더 높이 더빨리>의 그림을 그린 이현주, 이 책은 우리의 전래동요나 옛날이야기에 담긴 독특한 상상의 세계와 난센스를 살려 내면서 이제껏 주목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들을 찾아 말놀이로 공들여 다듬은 <호랭이 꼬랭이 말놀이>와 소유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의 그림을 그린 남주현, 3년에 걸친 관찰 끝에 탄생한 자연 관찰 체험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봄이의 동네 관찰일기>와 꽃을 피우기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의 일생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감동적인 드라마로 태어나는 <행복한 봉숭아>의 그림 작가 박재철 등은 천둥거인을 통해 생애 첫 책 혹은 두 번째 책을 내게 된 경우다.

특히 멋진 날개를 갖고 싶은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흑백 그림 <검은 새>와 글자를 가지고 마음껏 상상놀이를 펼쳐 보이는 <움직이는 ㄱㄴㄷ>, 그리고 진이와 훈이라는 두 아이의 신나는 그림놀이 속에서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의 그림 작가 이수지는 이제 국내뿐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 물감이 튀고 번진 자국을 통해 아이들의 즉흥성과 상상력을 그대로 전하는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도감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생태 그림책 <개구리논으로 오세요> 등 천둥거인의 생태책의 출판은 최소 2년이 걸린다. 또한 아무리 생태. 환경 전문가가 쓰더라도 기획이나 제작 과정에 편집자와 화가가 모든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2년여간 천둥거인은 ‘만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이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에 국내 최초 어린이를 위한 심리학책이라 할 수 있는 <나 좀 내버려 둬!>와 <왜 나만 미워해!> 등을 출판했으며 작가가 직접 관찰한 거미를 의인화하여 생태이야기를 전하는 <깡충거미 아차의 모험> 시리즈도 선보였다.

“출판 방향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기존의 틀이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처럼 창작그림책과 생태그림책 그리고 초등교양 도서들을 정성껏 만들 예정입니다”라고 전하는 오세경 부장의 말에서 천둥거인의 색깔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천둥거인은 유행을 쫓아 변덕스러운 출판을 하지도 않고 속도에 쫓겨 완성도가 떨어지는 책을 출판하지도 않을 것 같다. 모든 게 급변하는 세태에서 한결같은 천둥거인. 그래서 천둥거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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