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아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 프로그래머

하루 평균 책이나 신문을 읽는 시간보다, TV나 컴퓨터, 영화를 보는 시간이 3배를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제는 ‘문자’보다는 ‘영상’과 ‘미디어’를 통한 역동적인 소통 환경이 더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영상 환경을 이해시키는 가이드라인을 찾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근대 공교육은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리터러시)’을 중심으로 한 19세기적인 교육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고 지적된다. 현재 선진국에서 주목하는 21세기의 교육 철학은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를 해석하고 만드는 능력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은 현재 학교의 커리큘럼에 적극 반영 중이고, 전 세계 약 180여 개의 어린이영화제들이 가지는 기본 이념이기도 하다.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는 2005년 1회 행사를 기획하며 어린이들이 보는 영화, 어린이들이 만드는 영화, 어린이들이 심사하는 영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상영 프로그램과 부대 행사를 만들었다.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아, 젊은 부모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교육적 환경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2006년에 2회 영화제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로 관심을 돌려 장애인과 소외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어린이/청소년 부문의 주제가 ‘관객의 다양성’이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볼 때,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의 시도가 전 세계적인 이슈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가 2년 만에 아시아의 중요한 어린이영화제로 자리 잡았는데, 새로 구성된 고양시의회 내 의원들의 갈라진 의견으로 인해 올해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시의원들의 의견을 겸허히 경청하고자 했으나 삭감 이유가 근거가 없을 뿐더러 대화조차 원하지 않아 답답하다. 발전적으로 어린이문화를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어른들 갈등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심산이다.

고양시에서 지원했던 예산은 영화제 전체 예산의 15%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행사가 아니면 기 확정된 도비, 국비 등을 신청할 수 없다. 행사 개최가 불투명해지자, 올해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익사업을 펼쳐달라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후원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공익사업을 확대하고,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여러 행사를 준비하던 와중이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는 아쉽게도 고양시를 떠나게 되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비상업적이고 진지한 문화 행사들이 부족한 와중에, 어른들에 편견에 의해서 순수한 행사가 좌지우지된 선례가 남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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