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정치학 박사, 시사평론가

오늘도 퇴근길에 오른다. 석양이 뉘엿뉘엿 지는 자유로. 이 도로도 한때는 낭만적이었다. 왕복 4차선에 양쪽 차선 안쪽으로는 드넓은 녹지공간이 있는,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도로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도로였다. 지금은? 꽉꽉 눌러 왕복 10차선, 흔하디 흔한 도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장항 IC로 접어든다. 늘어선 주유소, 까짓 거 도심 안에 주유소가 있는 것보단 낫기에 참을만하다. 곧장 길을 달려 지하차도를 지나자마자, 거대한 철 구조물이 다가선다. 아마도 신축 중인 웨스턴 돔 측에서 놓았을 법한 육교가 아닌가 싶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저런 건 디자인 심사도 안하나?’ 아니,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지하차도를 지나면 언제나 다가서던 푸른 하늘을 잃어버린 것이 무척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뉴코아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이건 또 뭐야? 얼마 전에 생긴 버스전용차로다. 이 때문에, 좌회전 후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차가 밀려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추돌사고를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차로를 지나칠 때도 버스승강장에서 건널목을 건너려고 서있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요즘 부쩍 이곳을 지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서, 사고위험은 더 늘어난 상태다. 빨간 신호인데도 길을 건너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버스전용차로? 할 말이 많다. 버스전용차로 공사가 진행 중이던 내내 길을 지나칠 때마다 푸념을 늘어놓던 생각이 난다. 중앙분리대 녹지공간에 새 나무를 심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곧바로 포크레인으로 밀어 붙이더니만, 직선형 도로를 곡선형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로를 넓힌다고 인도까지 축소시키는 대담한 발상을 발휘하지 않던가? 날 더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인도에 화단을 조성한답시고 설치한 낮은 철제 칸막이다. 저 위대한 조형물은 대체 누가 골랐단 말인가? ‘고양군’ 시절을 연상케 하는 고색창연한 디자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일산동구청을 지나 일산경찰서에서 우회전, 빌라단지 사이로 접어든다. 이 길로 접어들면 늘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스카이라인이 살아있어서 좋다. 저동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얼마 전에 이곳 도로에는 차로와 인도를 막는 차단막이 설치되었다. 음, 그래! 학생들을 보호하겠단 말이지? 다 좋은데, 이것 또한 디자인에 관한 한은 할 말을 잃는다. 
이곳에 들러와 산 지 어느덧 11년이 되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남들에게 정말 쾌적하고 잘 설계된 도시라고 침을 튀겨가며 이사 올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차마 그런 말을 못한다. 살만큼 살아서 지루해져서 그런 것 아니냐고?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토지공사가 당초에 디자인한 것만 못한 방향으로 도시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증거는 도처에 널려있다. 누더기가 된 도로하며, 직선에서 난데없이 곡선으로 변하는 바람에 운전 중에 움찔 놀라게 되는 차선, 차량소통과 관계없이 사방천지에 칸을 질러 돈을 받는 노상주자, 그리고 일관성도 없고 감각도 제로인 무개념 도시 디자인까지. 내 흥을 깨는 것을 들자면, 하루 밤을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고양시장님, 고양시에 예술가도 많이 살고, 디자인 관련 전문가도 많이 살거든요. 제발 그 분들 좀 활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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