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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不)정책과 교육의 기본이현복 / 본지 편집위원. 한양대 철학과 교수
   
 
   
 

지난 3월 21일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는 “3불 정책이야말로 대학 교육과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기본 요소”, “서울대뿐 아니라 전체 대학 발전의 암초”라는 주장을 펴고, 이어 22에는 한국 사립대학총장 협의회 회장단 회의에서 한 총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권고처럼 3불 정책이 우리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막고 있다”며,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언론은 3불 정책을 둘러싼 구태의연한 찬반 논쟁에 휩싸이고, 기어이 대통령이 나서 3불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에 질세라 ‘정말 막가자는 것’인지 한 경찰관이 대통령에게 3불 폐지를 읍소하자, 3불 폐지를 마찬가지로 주장했던 한 유력 일간지가 이 읍소를 1면 톱기사로 실어 버린다. 이때 교육부총리는 전국 각 학교를 돌면서 3불정책의 정당성을 호소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3불이 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의 금지를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의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쪽 말 들으면 이런 것 같고, 저쪽 말 들으면 저런 것 같다.
그렇지만 3불의 찬반을 떠나 우선 분명히 할 게 있다. 3불을 옹호하든 반대하든 걸핏하면 OECD 국가를 들먹인다. 그런데 문제는 OECD는 우리와 참 많이 다른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우리가 운전할 때 ‘쌍라이트’를 번쩍하면 내가 먼저 가겠다는 신호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기다릴 테니 당신이 먼저가라’는 양보의 표시다. 이것은 그저 신호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와 그들 간의 존재하는 양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또 그들 나라에는 오피스텔 청약에 5조의 청약금이 벌떼처럼 몰리지도 않는다. 이런 차이는 사회문화의 차이고, 이는 곧 제도의 차이로 연결된다. 그래서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범주 착오(category mistake)’를 저지르는 것이다.
경쟁과 등급이라는 말은 입에만 올려도 정말 버거운 단어다. 그렇지만 사회적 동물인 한 인간은 경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등급이 매겨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말이 좋아 경쟁이고 등급이지 사실 피 터지는 싸움이고 전쟁이다. 여기서 승자는 웃고 패자는 운다. 패자는 승자에게 종속된다. 그렇지만 교육 스스로가 경쟁을 그래서 등급을 결코 조장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교육의 본질은 패자와 하등급을 보듬고 껴안는 데에 있다. 울타리에서 잘 지내는 양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길 잃고 헤매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심지어 양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더 더욱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경쟁의 패자를 따듯하게 배려하는 품성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망각된 기본, 왜곡된 기본이다.

지금의 경쟁 승리국으로 미국을 말한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미국적인 방식으로 교육해야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자꾸 며칠 전에 있었던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이 생각난다. 한인 1.5세대 조승희, 그가 비록 무고한 미국인 32명을 살해했지만, 경쟁 교육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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