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구 한 고교 교사의 교육사례

명철(가명)을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맏딸을 결혼식장에서였다. 혼주로서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건실한 청년으로 변한 명철을 강 선생은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B고 3학년 때 담임하셨던 김명철입니다. 섭섭한데요. 절 못 알아보시다니.”
그제야 강 선생은 명철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릴 수 있었다. 명철은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문제아였다. 고교 시절의 명철을 떠올리면, 예식장에 찾아온 명철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강 선생의 가슴속에서는 ‘그때 명철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정말 잘 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건실한 청년으로 거듭나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감사가 잔물결 쳤다.

명철과는 첫 만남부터가 이미 난관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시라면 제 동생을 잘 지도해주실 거라 믿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어느 날 명철의 누나인 주희(여·가명)가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주희는 강 선생이 몇 해 전에 고3 담임을 했던 학생으로, 당시는 대학생이었다. 주희 이야기의 골자는 C고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동생 명철이 학교에서 자전거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퇴학을 당할 처지에 놓였는데, B고로 전학을 시켜서 강 선생이 담임을 맡아서 지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 동생은 선생님이 아니면 영영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문제아를 전입시켜서 담임까지 자청한다는 것은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라도 선뜻 내키는 일이 아니었지만, 강 선생은 제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다.

강 선생이 알아본 바로, 주희가 누명이라고 말했지만 명철이 자전거를 훔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뿐 아니라 명철은 폭력과 음주 등 다양한 비행 경력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아였다. 그러나 이미 제자에게 약속한 일이기에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장 선생님, 전입을 허락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지도하겠습니다. 이런 학생을 무사히 졸업시키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강 선생이 책임을 지세요. 그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든지.”

그렇게 해서 명철의 담임이 된 강 선생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철을 지켜보았다. 명철과 같은 문제아에게는 간섭과 잔소리(?)가 되레 역효과를 낼 우려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 선생은 그저 명철의 등을 한번씩 툭 치면서 “잘 해”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 조용히 지내던 명철이 강 선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즈음에 사고를 쳤다. 방심의 허를 찌르는 것이 문제아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명철이 그런 사실을 잘 보여 준 셈이었다.
명철이 술에 취한 채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주차해 있던 대형 트럭을 들이받아서 팔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연락을 받은 강 선생이 병원에 달려갔을 때, 명철의 모친은 병실 복도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 하고 병실 문을 열었을 때, 강 선생은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명철과 또래의 불량배들이 무슨 파티에 온 것처럼 낄낄거리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담배 연기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친의 설명에 따르면, 명철은 나무라는 어머니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면 뛰어 내릴 거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4층 병실의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는 시늉을 하는 등 난리는 피운 직후라 했다. 그래서 명철 모친이 복도에서 울고 있었고. 강 선생은 불량배들을 다 내쫓은 뒤 명철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것뿐이냐? 이런 치사한 놈. 안 그래도 힘드신 어머니께 죽겠다고 협박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아들이냐?”
강 선생의 노기에 명철은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것은 강 선생이 명철의 탈선의 핵심 원인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명철의 비행은 툭하면 어머니를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원인이었다. 강 선생은 명철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취재·구성 권영갑 전문기자
일러스트 주윤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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