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둥이의 생각 읽기

<희망읽기>

노랑잠바의 사나이 권충현(장성3)군은 방학동안 “하루 12시간씩 게임을 하겠다”고 공언한다. 이유인즉 “리니지에서 지존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다. 남들이 붙여준 또 다른 이름이 ‘컴퓨터 천재’인 권군. 웬만한 컴퓨터 “조립, 분해, 재조립쯤이야”.

그러나 정작 권군은 외국어고등학교에 갔다. “실업계는 부모님이 반대하시고…. 컴퓨터 뺑뺑이로 원하지 않는 학교에 떨어질까봐” 였다.
‘지원자 전원 인문계 고등학교 합격’이라는 시작을 한 고등학교평준화. 고양시 2001년 중학교 3학년들은 열 여섯 살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준화 물결을 몸으로 부대끼며 받아야했다. 기왕 모두 합격하게 된 고등학교. “공부한 게 아까워 짜증났다”부터 “황당했다”까지 여러 느낌이었지만. 아이들은 이제 연합고사 준비는 제끼고 또 다른 준비로 바쁘다.

지금부터 고등학교 입학까지를 어떻게 살까? 지금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고등반 학원 열심히 다니겠다는 학구파부터 게임에 푹빠져 살겠다는 취미파(?), 땅끝마을까지 다녀오고 싶다는 여행파까지.

영낙없는 범생이 최영준군. 그래서 재미없는 사나이 영준군. 단지 친구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라도 오락실은 들어가기 싫은 이해할 수 없는 중3. 게임은 절대 안 한다. “재미가 없다.” 영준이는 다른 일로도 바쁘다. 전교 부회장에 학교 신문 편집장에 자기 반 아이들에게 외워야 할 영어 단어까지 프린트해서 돌려야 한다. 종이값이 너무 들어 다움 까페 게시판에 올리는 걸로 바꿨지만…. 한 친구가 억울해 하면서 말했다. “착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친구가 4명이나 된다”고.

영준군의 방학 중 계획은 기자 캠프 또는 리더십 캠프. 또 한가지 체
중 10㎏ 줄이기. 참고. 영준이는 70㎏이 넘는 육중한 몸매(?) 때문에 별명이 펭귄.

‘어둠의 자식’다혜는 아무 생각 안 하겠단다. 학원 열심히 다니고…. 다혜는 친구들이 모인 페스트푸드 점에서 친구들 주문 받아 2층을 오르내리는 친구였다. 아! ‘어둠의 자식’에 대한 해명. 한밤중에 스탠드 하나로 음악을 듣거나 무작정 생각에 빠져 있는 현상을 일컬음.

트로트를 R&b로 테크노를 트로트로 완벽하게 바꿔 부르는 유란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장래 희망이 개그우먼이었다. 희망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바뀌었지만 그 끼는 어쩔 수 없는 지 “나를 보고 친구들이 웃어주는 게 너무 좋다”고. 어머니의 손재주를 이어받은 유란이는 만들기가 취미다. 방학 중에는 친구를 위해 목도리를 짤 계획이다.

새별이의 1차 목표는 살빼기. 사실 방학 중에 지오디 공연을 빠지지 않고 보기로 작정했었다. 그러나 지원했던 ㅇ외고에서 미끄럼을 먹은 탓인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시큰둥하다. 만화책 키높이만큼 싸놓고 보겠단다.

수진이는 동생이랑 땅끝마을까지 여행할 계획을 세웠었다. “2월 달에 배치고사도 있고.” 수진이가 갈등하자 모두 소리쳤다. “가라.”


<공부 읽기>

평준화라고 해서 중3들은 두 다리 뻗고 놀았을까?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미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요즘에야 좀…. 어떤 학원 선생님은 그 소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달되었다는 소식 흘린 그 기자 말야. 잘못한 거야. 지금이야말로 아이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 올릴 땐데….”

올해는 어떤 때보다도 특목고 입시에 불꽃이 튀었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중3들이 작년에 2배를 웃돌았다. 그래서 학원도 성업. 어떤 학원은 고양시에 새로 생긴 ㄱ외고 전담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ㄱ외고 보내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결과는 ㄱ외고 237명, 서울시 외고 173명, 기타 특목고 67명 진학. 작년 보다 100여명이 더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실력 있는 아이들의 외부 진출(?). 평준화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

대부분의 중3들이 학원에서 고입 종합반 수업을 들었다. 단과가 있는 학원이 손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학원 선택은? “좋다”는 소문을 들은 학부모의 결정이 많았다. 학원 생활은? 아이들은 학교와는 달리“체벌 규정이 없어서”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 보다 더 엄한 또는 더 험한(?) 곳’이 학원. 매야 다반사다. 방법도 여러 가지. 몽둥이, 두 손으로 뺨치기, 손바닥 때리기. “차리리 맞는 게 낫다”는 데. 집에 연락해서 또 혼나는 거 보다는 맞는 게 낫단다.

일요일에도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학원살이를 해야했다. 외고반? 외고반은 방학동안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학원은 밤 자습시간에 아이들 탈출을 막기 위해 셔터를 내린다. “불나면 다 죽을 걸요.”

외고 수업은 대입 수능시험지가 교재다. 외고를 준비했던 영준이가 말한다.“대학 시험봐도 잘 볼걸요.”이번 미달 사태가 외고를 준비했던 아이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다. 시험 준비 방법이 전혀 달라 새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학원에서 중3 연합고사 준비 반이 영 시원찮다. 다 합격이라는데. 그러자 고양시 대부분의 학원들이 12월 둘째 주부터 중3들을 고등 반으로 내몰(?) 작정이란다.

<원서 읽기>

“2지망 어디 썼어?”
고등학교 지원서를 쓰던 지난 11월에 학교와 학원에서 가장 많던 질문. 평준화 첫 입시. 지원서에 16개 학교를 주르르 써야하니.
참고할 데이터도 없다. 선생님들도 속수무책. 머리 터진 건 학부모와 입시생들. “1지망은 모두 제일 가고 싶은 학교를 썼어요.” 1지망에 대한 갈등은 거의 없었다. 대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2지망부터 5지망까지가 문제덩이. 학교에서 학원에서 정세를 파악하느라 아이들만 바빴다.

정원 이상 1지망 학생들이 몰린 학교는 일산구에 대진, 백석, 백신, 정발, 주엽. 덕양구에서는 화정과 행신고다. 아이들 표현. “겉으로만 모자라고, 안으로는 넘쳤어요.”

올 인문계 고등학교 미달의 일등공신은 ‘알아서 조정한 실업계’. 평준화로 바뀌면서 ‘후기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학교마다‘위험수위 미리 조정하기’로 열을 올렸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탈락자를 안 만들겠다는 선생님들의 배려였지만. 인문계가 '간당간당' 한 아이들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들락날락 해야했다.

사전 집계에서 일부 학교는 미달, 일부 학교는 넘쳐나고. 또다시 조정. 결국 대부분 실업계도 '하향 지원'을 했다. 파주공고까지 진출..
올 실업계는 미달이 없다. 대신 “인문계를 갈 수 있는 괜찮은 아이들까지 실업계로 빠져나갔다.” 대신 인문계 고등학교는 미달. 실업계에 소신 지원한 아이들이야 문제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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