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 그 마법 같은 힘

▲ 연수단의 방문을 1면 Top 기사로 장식한 워싱턴 데일리뉴스.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신문사는 ‘한국은 지역신문 역사가 불과 20년밖에 않았다’고 놀라워하면서도 사진 밑에 연수단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역 밀착적 지역신문이라는 말이 축구장의 공처럼 떠다닌 것은 오래됐지만 그 실체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부터 출발시키는 지역기자들의 활동방식은 200년이라는 긴 역사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이자 동시에 적자생존의 법칙 속에서 살아남은 우량 유전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소규모 신문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존 로터러 교수(Jock Lauterer,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를 만나 미국 지역신문의 활동방식에 대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연수단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큰 행운이었다. /강희정 편집인 chesarae@mygoyang.com


#1
무인도에 신문을 들고 있는 발행인이 있고 인쇄기 옆에 한 명의 독자가 화난 듯 서 있다. 신문 헤드라인에는 “네드는 징징대는 놈이다”라고 써있다. 이 기사로 이 섬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신문은 나오자마자 폐간호가 됐다. 왜냐하면 네드라는 사람이 이 신문의 유일한 독자였기 때문이다.

#2
그는 자동차 충돌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구조대에 전화를 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차에서 담요를 꺼내 여자에게 덮어준 뒤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구조대가 당도했을 때 그는 비로소 사진을 찍었다. 그는 지역신문 기자였다.

#3
뉴욕시티의 작은 신문에서는 부부가 편집국장과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9.11 테러로 형제를 잃은 한 여성을 인터뷰하던 중 그녀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다가 중단하고 밤새 남편과 고민했다. “우리는 주간지니까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그러니 이 사진은 사용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러다 자정을 넘겼을 때 그들은 그녀에게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사진을 실으라고 허락했다. 그녀는 이웃에 살고 있었다.


이 사례들은 지역신문의 역할과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로터러 교수는 첫 번째 사례에서는 ‘지역에서의 객관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사례에서는 기자 역시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점에 대해 역설했다.

 

▲ 작은 지역신문이 뉴욕타임스를 제치고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지역신문 관계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프리덤 포럼(민간 언론지원단체) 회장 찰스 오버비(Charles Overby)는 기사에 정확성(Accuracy), 균형의식(Balance), 완전성(Completness), 초월성(Detachment), 윤리의식(Ethics)이 있을 때 공정성(Fairness)이 담보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로터러 교수는 “한 마을에 속해 있는데 어떻게 초월(Detachment)해서 생각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로터러 교수는 지역신문은 지역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정말로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 고장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그러운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판의 강도 역시 광역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보다 훨씬 섬세하게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언뜻 취재 원론을 뒤집는 이론같지만 그 이유는 두 번째, 세 번째 사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자가 그 마을에 완전히 속해있기 때문이다. 로터러 교수는 “중앙지와 달리 지역신문 기자는 독자들에게 사소한 것조차도 일일이 물어볼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의 사례를 들려줬다. 그 사진 작가는 지역신문을 창간할 예정이었는데 이유를 묻자 ‘그 마을 사람 모두가 나를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편집국

로터러 교수는 두 개의 신문사에서 15년 간 일했다. 그는 그 신문들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그 사례로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다’는 헤드라인의 신문 1면을 보여줬다. 사진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축하하며 모여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진 밑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로터러 교수는 “그 날은 7월 23일이었는데 그 더운 날 기자는 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아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다”며 “내 신문의 성공은 주민의 이름과 얼굴을 보여준 것에 달려있었다”고 단언했다.

그 기사의 바이 라인(by-line,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적는 줄)에는 사진과 기사 작성자의 이름이 동일했다. 미국 역시 소규모 지역신문에는 한 명의 기자가 여러 몫을 해야 한다. 그는 “기자나 발행인이 노동자처럼 보인다면 지역신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며 웃었다. 아직도 편집국장이 직접 윤전을 만져 인쇄잉크를 묻히고 사는 것이 일상화돼 있지만 미국의 지역신문은 그 영향력이 작지 않다. 그것은 작은 만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무엇보다 편집국을 활짝 열어놓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연수단이 방문하기 직전 나온 신문을 보여줬다. 전미 여성프로골프대회 기사였다. 그는 “이 신문은 원래 주간지인데 전미 대회를 치를 때만 매일 발행된다”며 로터러 교수 본인도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사진기자로 일했다고 말했다. 유명한 사람들도 이 기간에는 자원봉사 기자로 참여해 일하는 것이 전통이 됐는데 그것은 신문 작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바로 축제처럼 즐겁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참여해 1주일에 한 번 나오던 신문을 일간지로 만든다는 사실, 또 뉴스룸을 그렇게 활짝 독자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수단에게 충격과 감동을 줬다. 이어서 그는 편집국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사진을 보여줬다. “토너먼트가 끝났을 때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즐거워서 춤을 췄다. 왜냐하면 모두 탈진상태였기 때문이다.”
연수단은 그렇게 큰 지역신문사를 본 적이 없었다.

단 2명의 기자가 세상을 바꾸다

 

▲ 소규모 신문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존 로터러 교수는 지역주민이 참여해 주간지로 일간지로 만든 사례를 소개하며 “편집국을 완전 개방하라”고 주문했다.
미국에 대형 일간지는 247개, 주간지는 8103개에 달한다. 97%가 소규모 신문사로 미국은 작은 신문으로 꽉 차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독자나 이웃의 문제를 다룰 때는 지나치리만큼 신중하지만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노스캐롤라이나 대서양 연안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워싱턴 데일리뉴스(Washington Daily News)가 될 것이다. 워싱턴 데일리뉴스는 1990년 상수도 발암물질에 대한 탐사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력 있는 신문사다. 겨우 4명의 상근 기자가 일하는 작은 신문사지만 인구가 4만50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팜리코에서 독자를 1만 명이나 확보하고 있다. 거의 모든 가구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들 역시 1인 다역을 해야하고 허리케인이 오면 아예 집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단단한 사명감으로 뭉쳐있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바스 고문 편집국장은 “우리에게 이 상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신문사가 10명 이상 가동돼 기사를 작성할 동안 우리는 겨우 2명이 취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재의 발단은 편집국장이 수도국 청구를 받아오면서부터였다. 공지사항에 수질을 검사한다는 내용이 실려있어 검사 결과를 확인했는데 주민들이 먹는 식수에는 대장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들어있었다. 문제는 시 정부가 그 사실을 알고도 8년이나 그 사실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군부대는 외부에서 물을 공수해와 먹을 정도로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제야 연방정부는 수질에 관한 법을 바꾸게 된다.
마이클 바스 고문편집국장은 “나는 그 기사로 인해 친구를 여러 명 잃었지만 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것이 언론의 주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신문은 매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공장이고, 글과 사진 작업은 예술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비즈니스이며, 그리고 그저 사기업이 아니라 지역에 존재하는 엄연한 기관이다. 미국의 대형 일간지가 더 큰 신문그룹에 팔리거나 문을 닫을 동안 대부분의 작은 지역신문은 직원과 독자를 꾸준히 늘리며 성장해왔다. 대형신문이 모르는 그 어떤 것을 작은 신문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연수를 통해 연수단은 그 답을 희미하게나마 쥔 것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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