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호 / 뮤지킹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대표, 음악컬럼니스트

시민 설 자리 없는 행주문화제를 보며

축제는 도시를 리모델링한다. 따분한 콘크리트 숲을 설레게 하고 낯선 아스팔트 길 위를 향수(享受)로 적셔 놓는다. 메마른 땅에 영혼이 숨쉬게 한다. 시든 꽃처럼 하루하루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축제는 부활을 꿈꾸게 한다.
전국에서 고양시만 한 규모의 도시 치고, 관립 교향악단 하나 없고 제대로 된 축제 하나 없는 도시는 없다. 꽃박람회가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꽃 농사를 생계로 삼고있는 화훼단지 사람들에게 점수(표)를 따기 위해 만든 전시품이니 축제라 부르기엔 멋쩍다. 그런데 웬걸? 고양시에도 축제라 할 만한 문화가 있다. 바로 행주문화제다.

하도 시민들이 본체만체 하니까 금년 스무 회를 맞아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한 모양이다. 거리의 포스터가 달라진 얼굴을 보아달라고 손짓한다. 무엇이 달라졌나? 우선 모든 프로그램이 ‘거리’에서 이뤄지는 일관된 컨셉이라는 점에서 칭찬 받을 만하다(예전부터 원래 거리 퍼포먼스와 퍼레이드 중심으로 행사를 치렀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성형된 미인은 미인이 아니라 숫제 엽기(獵奇)다. 눈은 오드리 헵번, 코는 클레오파트라, 입은 소피아 로렌, 뺨은 황진이… 이런 식이다. 차림표를 보았다. 가짓수는 많은데 젓가락 갈 데 하나 없는 맛없는 식당에라도 들어간 기분이다.

예컨대 일본의 비누방울쇼나 한·중·일 삼국 줄타기는 기괴하다. 이것저것 버무린 삼색콘서트는 ‘열린음악회’ 흉내내기일 테고, 체험행사에 행주문화 영어퀴즈를 넣은 것이나 미술심리치료 등이 끼어들어간 것도 생뚱맞다. 개막공연에 KBS국악관현악단을 불러들인 것 역시 진부함이 드러나는 기획이다. 도대체 왜 의도적으로 국악관현악을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반면에 한국-네덜란드극단의 합작품 ‘구도’, 프랑스 오뽀지또 극단의 ‘시네마토폰’이나 이탈리아 극단의 ‘택시쇼’ 그리고 ‘행주농악’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다.

행주문화제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 카니발에 더 가깝다. 페스티벌은 ‘기획’적이지만, 카니발은 ‘풍속’적이다. 따라서 타 지역보다 월등하거나 독창적인 문화전통이 없다면 아예 생성될 수 없다. 예컨대 ‘행주’는 그 이름만으로도 커다란 프리미엄이 붙어있는 고양의 문화 콘텐츠다. 하지만 전통은 ‘답습’이 아니다. 연례적인 지역 이벤트의 하나로 과거의 재현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카니발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혁신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행주문화제는 시민 위안잔치가 아니라 시민문화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베네치아 카니발이 ‘마스크’란 오브제를 캐릭터로 사용하여 성공했듯, 행주문화제만의 오브제가 필요하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승전을 기념하고, 특별히 행주치마의 전설을 떠올린다면 고양시 특유의 오브제를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번 프로그램의 컨셉이 거리 퍼레이드와 거리 퍼포먼스인 것은 변변한 거리축제가 없는 한국 축제계의 통념을 선점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다. 앞으로 행주문화제가 에딘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거리문화축제로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세계 각국의 여러 퍼포먼스 팀들이 찾아오고 싶어하는 거리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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