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미 회장 / 고양 YWCA 허영미 회장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요즈음 호수공원의 물과 하늘은 더욱 맑고 드높다. 천연호수 부근의 열대 연잎 사이에 헤엄치는 청둥오리와 붉은 잉어들, 바람에 날리는 마른 갈대 잎 등 자연의 정취가 짙고, 새로 개관한 아람누리ㆍ어울림누리의 예술 향연 등 갖가지 전시회와 문화행사로 시내는 부산하다. 아름다운 가을 거리에서 나는 잠깐 잊고 있던 고양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고, 환경ㆍ문화도시로서 우리 고양시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금 마음에 떠올려 본다.

지난 10월 1일, 호수공원 수변무대에는 고양시의 주요 인사들과 시민들이 모여 시민의 날 행사와 행주문화제 개막식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관료와 지방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그 자리에는 준 관변단체라 할 수 있는 민간단체 이외에는 독립적 시민단체 대표들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시민의 날조차도 시민단체 대표들이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정치와 이익에 개입한 중앙의 몇몇 시민단체들로 인해 시민단체가 공공영역에서 본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자성을 촉구할 권리는 시민들의 몫이고 시민사회의 발전에 봉사해야할 시당국이 시민단체를 멀리할 구실로 그들의 과실을 악용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시민사회를 대표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가 독립성을 포기하고 관청에 순응하기만 하는 준 관변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민단체이기를 그만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많은 민간단체들이 묵묵히 시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외곽지의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복지와 인권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시정을 돕고 있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1세기는 NGO의 시대라 한다. 세계화ㆍ지방화ㆍ정보화ㆍ민주화가 날로 진행되는 오늘날 인류는 문명의 전환기를 맞고 있고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민간의 역할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제 정부도 시민사회와 함께 협조하는 선진 행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공직자의 마인드도 바뀌어야 할 때이다. 정부와 민간이 같이 성장해 이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만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 치열한 국가주의 시대에도 이웃 일본의 저명한 민간 지도자 후쿠자와 유끼치가 남겼던 명언이다.

어느 관민합동회의에 초대된 그가 수상 이하 앞줄에 늘어선 정부 관료들 뒤로 민간대표들의 자리가 배치된 것을 보고 현장을 박차고 떠나버린 일화는 오늘날에도 대단한 감명을 준다. 민간의 역량이 자라나고 대접받을 때 비로소 풀뿌리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꽃이 필 것이다. 오직 봉사의 정신으로 물질과 시간, 능력을 바쳐 시민단체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최근 시대를 역행하는 시당국의 모습을 보자니 아직도 낙후된 우리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관변의 권위주의 속에서 선출된 지 1년도 안 되는 시의원들이 시민의 대표라는 본분을 잊고 아무런 실적자료도 보이지 않은 채 마음대로 16% 연봉 인상안을 의결하다니! 관청의 홀대를 받는 시민단체와는 아랑곳없는 미숙한 지방자치의 현실을 새삼 확인하며 아직도 이 나라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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