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적 이력과 경험부터 소개하자.
나는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이렇다할 경력도 없는 사람이고 80년대 ‘운동권’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가한 자들의 외유’ 정도로 비칠 수 있는 해외유학까지 갔다온 사람이다. 귀국 후 민주노동당 창당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 누구의 권유도 없이 자진해서 입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계기가 나를 진보정당 자원 입당으로 이끌었는가? 가장 큰 계기는 유학을 했던 프랑스에서의 경험이었다. 나는 프랑스와 그 국민성에 대해서는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에 서 있다. 특히 서구를 제외한 다른 나라(제3세계 국가)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무지와 비하의식을 현지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굳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인들이 프랑스 사회를 주의깊게 바라봐야 할 지점이 있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한 국가운영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빈부 격차 불균형의 최소화를 위해 국가가 소득 재분배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 소득수준에 따라 세금(부유세 포함)을 매기고 그것이 다시 사회와 국민에게 환원되는 복지체제가 그것이었다. 국가 구성원인 국민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 즉 무료진료, 무료교육, 주거비용 지원이 ‘국가’에 의해 행해진다는 복지제도의 관념적 원론이 직접 실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체류기간 동안 위의 세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곳에서의 개인적 경험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깨닫게 했다.

60년대 군사정권의 고도성장 정책 이후로 만연되어 온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전투적 경쟁의식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정치권력층과 경제 기득권자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 사회적으로 세뇌시키며 더욱 치열해져가고 있다. 경제, 사회 시스템은 한국의 기득권층들이 외치는 신자유주의만이 유일 노선은 아니다. 제도는 ‘선택’의 문제다. 즉, 정치, 경제철학적 선택의지와 결단의 문제다.

한국은 기득권층들도 떠벌리듯이 GDP(5천조원) 규모가 세계 11-12위권이며 1년 예산 110조원을 쓰는 세계 경제 상위권 국가다. 문제는 불평등한 조세제도, 허술한 경제사법구조와 감시체체, 그에 따른 만연된 부패구조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들이 횡령했다는 7조원은 한국 모든 대학생들의 1년 등록금과 맞먹는다.

정치, 경제 기득권세력들에 대해 사무, 생산직을 망라한 노동세력이 거시적 차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함을 자각하고 단결할 때 사회에 변화는 온다. 진보(進步)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해방’이다. ‘인간해방’은 ‘인간 다수의 해방’이다. 역사적으로 ‘해방감’은 ‘소수’만이 누려왔고 지금도 경제, 사회적으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소수’만이 향유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층(일반 국민)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대는 반면 그 ‘소수’는 법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까지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 ‘자유’와 ‘해방’을 다수가 누리도록 하는 것이 진보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그 ‘다수’가 기존적 질서와 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는 사로잡힌 현실에 반대하는 꿈을 꾸는 자에 의해 전진한다”는 김규항의 말이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민주노동당 일산갑 지구당 부위원장>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