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전화 좀 쓸게요?”
“왜?”
“물어볼 게 있어서요.”
“자, 물어.”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다.
기쁨이가 전화를 써야하는 이유. OMR 카드에 쌍비읍을 표시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건 기쁨이. “원서 접수하는 데서 안내원에게 물어보래, 에잉. 짜증나, 짜증나.”
기쁨이는 휭하니 바람 소리를 내며 3학년 교무실을 나갔다.

2002년 대학 1학년을 예약해 놓은 아이들이 원서를 쓰는 첫날. 백석고 3학년 교무실 풍경이다. 수능 점수는 떨어지고, 전국 석차도 모르고. 선생님들은 부랴부랴 자료를 만들었다. 노란표지에 ‘2002 입시 안내’. 3학년 복도 양쪽으로 4대 학원 ‘배치 기준표’와 2000년, 2001년 졸업생 진학 상황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선생님들 컴퓨터에는 각 대학별로 점수를 넣으면 순위가 나오는 데이터베이스가 들어있다.

ㄱ이 손에는 수십 장의 종이가 들려있다. 자기소개서부터 추천서 들들들. 서울대 원서를 쓸려면 이 수십 장을 다 채워야 한다. 서울대 원서를 쓸 수 있는 아이들은 행복하기는 하다. 대신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머리에서 쥐가 난다”.

교실에서는?
둘둘셋셋 짝을 지은 아이들.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나군은 어디 쓸거야?”
“쓸 데가 없어.”
손을 맞잡은 두 여학생 조잘거림에 영 생기가 없는 건 웬일일까?
ㅇ이는 “소신을 가지고 왔다”가 “안전으로 바꿨다”고. 소신과 안전을 오락가락하며 사온 원서만도 여덟 개. 원서는 딱 3장만 쓸 수 있다.“상담이 문제야 상담이.”책상에 반쯤 엎드린 채 뾰루뚱하다. “난 새됐어.”

다시 교무실.
한 여학생이 주저주저 들어섰다.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나?
“어디 쓸려고?”
“이대하고…”
선생님은 배치 기준표로 학생을 끈다.
“성대, 동대는 접수하고….”
6평 남짓한 3학년 교무실은 원서쓰는 나흘 내내 왁짜할 판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