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 / 무원고등학교 교사

불감증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처럼, 매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 때쯤이면 으레 지나온 한 해를 되짚어보게 된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며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보완하고, 잘못을 가슴 치며 반성하는 것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덧 연례행사처럼 되고, 반성을 하면서도 연례행사임을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새해에 다시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심각하게 하다보면, 금년 말에도 작년의 그 모습을 또 보겠구나 하는 생각조차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는 삶이 되어버렸다. 예전엔 주변 사람들과 행복과 아픔을 같이 했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제는 관심 밖의 일로 여겨진다. 남들과 함께 격려하고 박수치고 때로는 가슴 아파했던 것 같은 그 때를 눈감고 돌이켜보면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따스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변하는 것일까? 세상이 변하는 것일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억지로 꾸민 위선적인 이 표정이 싫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일상은 삶에 지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과정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서 순수하게 살기가 훨씬 힘들고, 자신을 바로 세우기도 웬만해선 어렵다. 그런 가운데 한 해를 보내는 망년회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까지 가는 것이 다반사라면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한해의 마무리 만큼은 무엇인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나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조금은 세상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지난 온 날들이 부끄럽고 후회도 되어 이제부터는 보다 알차고 보람되게 살아야겠다고 혼자 다짐을 해본다. 며칠 가지도 못하지만.

올해를 보내면서는 나를 잊어버리고 싶다. 아니 이번만큼이라도 나를 버리고 싶다. 나에게서 잊혀진, 우리에게서 잊혀진, 그래서 꿈도 희망도 가지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디선가 홀로 애쓰는 사람을 위하여 나의 자리를 비워두고 싶다. 일어나도 혼자 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나의 삶의 일부분을 양보하고 싶다.

이번 연말만큼은 내가 가진 시간과 금전의 일부나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위해 쓰고 싶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한해의 마무리를 하고 싶다. 망년회가 삶의 고단함과 티끌을 잊어버리려는 몸부림의 파티, 질펀한 술자리가 아니라, 힘들고 지친 자들을 위한 조용한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술잔을 들고 위하여!를 외치지 말고 무릎을 꿇고 더 낮은 곳을 보면서 위하여!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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