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행지

자신 안에 아프리카 열대우림의 열꽃을 간직하고 있던 정해종 시인이 드디어 일을 벌였다. 아프리카 전문 미술관 ‘터치 아프리카’를 개관한 것.

자신의 아프리가 사랑에 대한 실천의지를 처음 보여줬던 곳은 지난 여름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다. 5월 9일부터 6월 30일까지 있었던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이 그것. 하지만 정시인은 일회성 전시가 자신의 ‘아프리카 사랑’을 채우지 못함을 절감. 현대미술의 출발점인 아프리카 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계획했다. 주저할 수 없는 일. 일산구 풍동 450-10에 갤러리를 마련했다.

아프리카를 만지자. ‘터치 아프리카.’ 만지고 느끼려면 작품이 있어야 하는 법. 1차로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조각 400여점을 공수했다. 짐바브웨로 날아가 작품을 직접 수집했다. 수집과정에서 정 시인은 ‘자신 안의 열대우림’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이 느낌을 시로 노래했다. 11월 30일 갤러리 개관에 맞춰 자신의 두 번째 시집 ‘내 안의 열대우림’도 출간. 개관전은 ‘스톤 스캔들(STONE SCANDAL)전.’ 돌들의 추문이 아니라 돌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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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시인의 아프리카 사랑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진 않다. 내년 1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생각이다. 회화, 세라믹 아트, 목조, 철조 등 아프리카 미술의 모든 영역을 둘러볼 계획이다. 수집되는 작품은 풍동으로 옮겨져 터치 아프리카에 전시된다.

터치 아프리카에 가면 이프리카 민속음악 ‘말라이카(Malaika)’를 들을 수 있고 정해종 시인의 시도 읽을 수 있다. 갤러리를 찾기전 미리 예약을 하면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을 듯. 원한다면 정시인과 문학과 예술에 관한 담론을 나눌 수도.

꽃이 지면서 열이 올랐다/까닭 없이 코피가 터지면서/몸 속 것들이 몸 밖으로 터져 나왔다/꽃은 지고 또 지고, 황사 걷힌/하늘은 연일 쾌청을 부르짖는데/마음은 거리로 나가 이슥토록 돌아오지 않았다/꽃이 지면서, 꽃의 붉은 꽃물이/불온한 꽃말이 몸 속으로 번져갔고/감추어졌던 것들의 분규가 찾아왔다/오월이었다/나는 잠시일 거라고 생각했고/진맥 짚던 노인은 빈 술병을 가리키며/열熱과 습濕의 과다라고 했다/그랬구나, 꽃이 지면서/내 안에 열대우림이 자라고 있었구나/뜨거운 그 무엇이 출렁이고 있었구나/꽃잎 다 지고 몸살이 지나가면/그 자리에 종양 같은 열매가 맺히겠구나/자라면서 깊어지는 것이/사랑하고 병이라는 수수께끼를/나는 온몸으로 풀고 있구나(시집 ‘내 안의 열대우림’ 중 춘투)

◆짐바브웨 인구 70%의 쇼나 부족=조각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쇼나 부족은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년 전까지 로디지아였던 국가명이 짐바브웨로 바뀐 것도 기원전 8세기쯤 형성된 쇼나부족의 광대한 돌 유적지‘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에서 유래한다. 짐바브웨는 ‘돌로 지은 집’‘돌 주거지’라는 뜻. 이런 석조문명의 전통이 현대를 살아가는 쇼나 부족에게 원형 상태로 보존돼 오고 있다. 20세기 미술계의 거장인 피카소, 마티스, 미로 등이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원시가 아닌 자연미를 살린 조각=쇼나 조각가들은 철저하게 돌의 형태에 따른 구상을 한다. 밑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으며 돌의 결을 따라, 돌이 지시하는 대로 그 안에 숨어있는 주제를 찾아 낸다. 조각가와 돌의 일체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쇼나 조각이다. 또한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작가의 돌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다. 돌의 원형이 최대한 살아있기 때문이다.

◆쇼나 조각의 개념=쇼나 부족에 의한 조각 예술의 의미는 아니다. 작가가 쇼나족 출신이거나 사회문화적 동질감을 갖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쇼나 조각’이라 부른다. 때문에 짐바브웨 원주민 뿐 아니라 이주민과 유럽인들도 있다. 요즘은 ‘짐바브웨의(of Zimbabwe) 돌 조각’이나 ‘짐바브웨에서의(in Zimbabwe) 돌 조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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