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숙씨 공양왕 현몽 후 9월 9일 기일로 지켜

지난 10월 22일 문화재 위탁관리인 전진원(66)씨는 원당동 공양왕릉의 쌍릉 중 왼쪽 봉분의 뒷면에 가로 1m, 세로 1m 정사각형의 구멍을 발견했다. 전씨는 문화재 도굴꾼들이 다녀간 흔적이라고 판단 고양시 문화재 담당에게 보고했다. 고양시는 보고가 있은 후 현장을 확인하고 같은 달 24일 고양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도굴건 관련해 수사가 진행중인 공양왕릉에는 고려자기 등 고려시대 유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부장 품목에 대한 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피해품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곧 문화재청 주도로 피해품 확인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로선 이번 사건이 도굴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무엇을 도난당했는지도 파악 못할 형편.

공양왕릉의 잔디가 정사각형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전씨가 아니었고, 발견일도 22일이 아니었다. 처음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원당동에 살고 있는 서효숙(62)씨.

10월 20일 서씨의 꿈에 공양왕이 나타났다. 음력 9월 9일(10월 25일)이 가깝기도해 서씨는 21일 왕릉을 둘러봤다. 왼쪽 봉분의 뒷편 잔디가 파헤쳐진 흔적을 발견했다.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서씨는 김경태 시의원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다음날 관리인 전씨가 현장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

서씨가 공양왕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2월. 꿈속에서 공양왕을 처음 만났다. 이때 공양왕은 서씨에게 “낡은 집 좀 고쳐다오. 배고픈데 9월 9일에 밥 좀 다오”라고 말했다. 서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 가까운 곳에 왕릉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집 안 어른께 꿈이야길 했더니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들 하셨다. ‘우리 집안이 고려의 충신이었던 포은 정몽주의 후손인 연일 정씨라 공양왕이 네게 나타난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왕릉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고.

왕릉을 찾은 서씨는 까무러칠 뻔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무너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서씨는 현몽대로 음력 9월 9일을 기일로 정하고 매년 공양왕 제사를 모셨다. 또 왕릉을 단장하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도 털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중 1999년 문화재청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1970년에 사적 191호로 지정된 것은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의문이 드는 대목.’

서씨가 매년 제사를 모셔오던 중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회장 이은만)는 지난 11월 10일 원당동 공양왕릉에서 왕릉제와 학술행사를 가졌다. 공식적인 공양왕 제사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셈. 그러나 강원도 삼척의 또 하나의 공양왕릉에서 왕씨문중이 음력 10월 10일을 기일로 정해 제사를 모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서효숙씨의 96년 제사가 고양시에서 공양왕을 기린 첫 번째 제사다.

삼척의 공양왕릉과 원당동의 공양왕릉에 대한 진위여부의 논란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 당국은 고양시 왕릉을 국가 사적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도 30년씩이나 방치하기도 했으며, 한 차례도 정식발굴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

서효숙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진실이 어찌됐건 국가의 체계적인 문화재 관리가 필요하다. 사적으로만 지정해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문화재 관리 당국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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