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병 훈 / 국가연구원장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충남 태안에서 처지를 비관한 주민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굴 양식업을 하던 어민과 바지락을 캐면서 생활해 온 노인의 자살에 이어 회집을 운영하던 주인이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면서 농약을 마시고 분신 자살했다.
검게 변한 바다와 해안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 앞으로 바다에서 조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실감에 좌절하고 있는 어민들, 보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낙담해 있는 주민들이 절망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1월말까지 현지에 지원토록 이미 배정한 긴급 생계지원자금이 아직도 현지 주민들에게 한 푼도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정부와 충남도,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1월 말까지 지급토록 한 정부지원금 300억 원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배분해야 할지, 각종 보상대책 위원회와는 어떻게 합의를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 아직도 발이 묶여 있다고 한다. 알뜰하게 모은 국민성금 300억 원도 충청남도와 지자체가 나누어 현재 보관중이라고 한다.

현지 사정이 이런데도 행자부가 사고현장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수가 100만 명을 넘었기 때문에 ‘태안 자원봉사활동’을 ‘UNEF(유엔긴급군)’등에 보고하여 전 세계가 공유토록 하고, 노벨상 환경부문 후보로 적극 추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를 위해 활동백서와 영상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현장에 영상교육관이나 피해복구 기록관을 세워 환경보호의 산교육장이 되도록 하며, 태안 인근을 관광자원화 하겠다고 했다.
태안 봉사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한다면 국가적 경사임에 틀림없다. 온 국민의 정성이 모여 아름다운 상을 받는 일이기에 반갑고 뿌듯한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웬일이고, 가슴속에서 무엇이 치솟아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현지 주민들이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하고 목숨을 끊고 있는 이 마당에 무슨 기쁜 일이 있어 노벨상을 운운한다는 말인가? 긴급 생계지원금이 한 푼도 나가지 못하고 있고, 생존을 건 복구작업이 지금도 진행 중인데, 도대체 노벨상은 무엇이고, 교육관과 기록관은 또 무엇이며, 지역을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해괴한 발상인지 이해할 수 없다.
당장 죽음의 자살행렬을 막아야 한다. 잃어버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이들 공무원들이 지금 제 정신으로 한 말인지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들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1차 긴급 생계지원금을 현지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일이다. 노벨상이라는 국가적 경사준비 이전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 주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는 당장 음독과 분신자살의 행렬을 막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사고를 친 삼성중공업과 원유를 수입한 화주인 현대오일뱅크도 도의적인 책임을 물도록 이런 일을 정부가 나서서 주선하고 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1차분 긴급 생계지원비의 즉각적인 지급, 정부의 추가 지원비 마련과 집행을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촉구한다. 아울러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정치권에 주문한다. 특히, 그동안 무허가나 소득자료 없이 조업해 온 상당수의 주민들도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합당한 보상받을 수 있도록 관련기관이 지혜와 힘을 모아 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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