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황상민 교수 강연

“우리 애는 컴퓨터를 끼고 살아”
방학이다. 컴퓨터가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시간. 부모들은 고민한다. “말려? 프로게이머를 만들어?” (사)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와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가 연 ‘온라인 세상 속의 우리 아이,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에서 연세대 황상민교수(심리학과)는 “아이들을 믿어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 생활이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보다 더 재미있는 있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우리나라 인터넷 접속자는 10대 청소년이 41.6%를 차지한다. 넬슨·넷레이팅스 조사결과.
미국이나 유럽 국가 청소년 접속율은 16∼17%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인터넷 이용은 사회활동을 하는 20∼30대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처럼 인터넷 사용이 10대 중심인 건 특이한 예다. 이 수치대로라면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컴퓨터에 목매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들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 현실을 원인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학교 교육 내내 입시라는 긴 터널 속에서 헤매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컴퓨터는 탈출구 역할을 해준다. 부모와 자식간의 문화·세대간 단절도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에 몰입하는 이유로 든다. 일면 옳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의 모든 문제를 현실 문제의 반영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이버 문화가 10대의 주요 문화로 그리고 핵심 대중문화로 자리잡았다. 단순히 대중 문화를 추종하고 새로운 매체를 선호하는 몰지각한 청소년들의 행동특성으로 몰아버릴 수는 없다. 여기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주류문화에 대항문화를 만들려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인생’, ‘내가 만드는 삶’이 청소년들의 생활 방식이자 사고하는 방법이다. ‘N세대’. 이들에게 정보 통신 문화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깃발이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사이버 캐릭터로 놀고, 채팅하고, 메신저를 이용하는 그저 ‘생활’이다.

“내가 실제로는 개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테니까”라는 유머가 실현되는 장일 뿐이다. 이런 변신이나 놀이는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한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관심을 가진 하이버 공동체가 중심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는 현실의 무엇과 같다. 한 국내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일명 카페의 45%를 10대가 만들었다. 현실에서 골목마다 줄을 서있는 커피숍, 카페, 술집을 10대들은 컴퓨터 안에 옮겼다. 문화 복제라고나 할까.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한다. 소심해서 남들과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도 리더가 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상상의 관중’을 만난다. 여기서 자신이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개인적 우화’를 만들어간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인터넷에 중독되었다”고 고민한다. 그러나 ‘중독’이란 다른 생활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를 의미한다. “컴퓨터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수준이 아니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컴퓨터나 인테넷을 과도하게 사용하기는 참 쉽다. 왜냐하면 책이나 공부보다 훨씬 자극이 강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쉽게 다른 사람과 놀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쉽게 그만둘 수 있다. 대체로 컴퓨터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시기는 6개월 정도다. 생활에서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면 6개월 전이라도 아이들은 컴퓨터를 떠난다. 혹 1년 이상 인터넷에 몰두하는 예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생활 환경이 너무 무료하거나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으로 현실과 사이버를 구분 못하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듣는다. 이는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다. 인터넷이나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실제 생활의 놀이꺼리를 찾을 수 없는 우울하고 답답한 생활환경을 나타낸다.

부모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활동이 아이들이 새로운 자기 모습을 찾고 실험하는 모험활동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인생이라는 정글을 잘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하지마’라는 단어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현실이나 사이버 공간 모드에서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믿어주기’가 필요하다. 재미있고, 더 의미있는 일을 찾아주는 일도 바로 부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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