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9, 39를 만나다

누구나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때이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시작되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10대에서 20대가 되고 20대에서 30대가 되고 30대에서 40대가 되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나이가 한 번에 열살만큼 늘어난 것 같지 않을까?

십대의 끝자락에 선 아홉수.
이현승(19, 대진고3)군. 대학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불안할 만도 한데 너무 여유를 부린다. 장난기있는 눈에 웃음이 가득하다.

수능점수가 모의고사보다 40점이나 떨어져 방문 잠그고 울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시험을 못 봤다는 것보다 부모님께 동정받으려고 선수를 친 것이라니. 어쨌든 눈물을 보인 결과 부모님이 감싸줬다며 까무잡잡한 얼굴에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철부지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교육부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까지의 공백기간을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둥, 요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서 미팅에 대한 환상보다 극심한 취업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는 둥 이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가슴 뜨끔할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래서 미팅은 할 생각. 이상형은 느낌이 오는 사람이란다.

현재 청소년미래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기자로 일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언론에서 말하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고 말한다.

취미는 공상하기.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가만히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어떤 악세사리를 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 것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맞출 수도 있다고 자랑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디자인, 법철학, 문학도 두루 섭렵해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힌다. 아직 정해진 목표는 없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아 진로를 결정할 생각이다.

십대를 마감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그동안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것. 뭔가 하나를 정해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한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도 당당할 수 있는 나이, 이렇게 스무살은 시작된다.


젊음의 한가운데 스물아홉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한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송정희(29, 백석동)씨.

그녀는 지금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직장을 옮겼다.젊었을 때 여러가지 일을 해 보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한다. 새벽 여섯시에 운전학원에 가고 바로 회사로 출근한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퇴근 후에도 영어회화학원으로 직행한다.

데이트할 시간도 없어 결혼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맘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살 수도 있다고 당차게 말한다. 그보다 자신에게 더 많이 투자하겠다는 뜻.

그렇다고 일만 하는 일벌레는 아니다. 놀때는 놀고 일할때는 일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관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어찌 보면 까다롭다. 무조건 챙겨줘야 하고 얼굴이 좀 아니어도 옷은 세련되게 입는 사람이 좋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지만 사람은 똑똑해야 한다.

이제 이십대를 마감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 여행도 많이 다니지 못했고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그녀는 "뭐든 배우겠다"는 자세다.

"주변에서 노처녀라고 아무리 구박해도 꿋꿋하게 살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우리 시대 도전하는 젊은이다.

서른 아홉, 소주 한잔 생각나는 나이죠

“첫 아이를 낳고서 처음 아줌마 소릴 들었을 때는 너무 놀라고 섭섭했어요”
서른 아홉 박복순씨. 그녀는 여전히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아직 마음은 십대라며 십대 소녀같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일곱살, 아홉살된 두 아이의 엄마. 한 남편의 아내. 그리고 그녀 자신.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타이틀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신문과 TV뉴스를 보는 일이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자칫 세상 돌아가는 것에 소홀해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남편과 시사문제를 토론하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간호사로 일했다. 힘든 간호사의 일에 대한 슬럼프에 빠져 그만두긴 했지만 가끔 수간호사 자리에 오른 친구들을 보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다시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무역업하는 남편이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건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같이 시장 봐주는 자상한 남편에게 만족한다. 처가집 경조사에 발벗고 나서는 남편에게 고맙다.

가끔 권태기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남편과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 싫어진다”며 깔깔 웃는다.

권태기는 역시 소주한잔으로 풀어버리는 게 최고. 가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아이들의 재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고 여건이 허락되면 가정간호사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이렇게 서른 아홉의 겨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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