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어느 총선보다 이번 4·9총선의 후보자 공천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총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12일 현재, 전체 지역구 245곳 가운데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172명을, 통합민주당은 55명을 공천 확정한 상태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총선에 출마할 1차 예비후보자 73명만을 추린 상태고, 진보신당 역시 수도권 출마자 19명의 예비후보자를 내세우고 있는 상태다. 그 외에 자유선진당, 창조 한국당 등은 한두 곳을 빼고는 공천구도가 안개 속이다. 특히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경쟁률이 덜한 지역은 일사불란하게 공천을 매듭지었으면서도 각기 텃밭 격인 영남과 호남권에서는 계속 뜸을 들이고 있다.

늑장 공천의 이유야 각 당마다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공천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공천과정은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늑장공천의 피해가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정치가와 유권자간의 상거래다. 그것도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를 상대로 유무형의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상품을 파는 시장이다. 이를테면 ‘공약’이‘상품’이 된다. 따라서 선거장은 각종 공약이 진열된 정치적 백화점인 셈이다. 이 백화점 앞에서 정치적 소비자들은 서성이지만 정작 진열된 상품들이 별로 없어 백화점은 활짝 문을 열지 못하고 반쯤만 열어 놓았다. 소비는 있는데 공급이 없는 이 기형의 시장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 어느 물건이 좋은지 따져볼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 이러한 정치적 시스템은 분명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의 정치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절대 앞설 수 없다는 진리도 이렇게 결함이 있는 정치 시스템에서는 슬쩍 비켜간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정책대결로 깨끗한 선거를 치루자는 메니페스토도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겠는가. 정치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무시한 채 마켓 쉐어만 강조되는 정치에서 유권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좁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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