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방송국에서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라도 경쟁 방송사들을 누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사극이다. 사극은 역사를 바탕으로 쓰기 때문에 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어린이들이 가질 수 있는 역사성을 생각한다면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인 고려보다는 개인적인 갈등 상황을 너무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 역사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개인적 권력 투쟁이 중심 되어 진행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갈등 해소도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비정한 비정상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흐르지는 않는다. 우리 어린이들이 조상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편협한 역사관을 줄 수 있는 문제도 있다. 과거의 역사를 다루는 문제에 있어 다각도로 생각하는 것이 역사적 객관성을 높이는 길일 것이다. 승리한 자들 중심으로 사극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과정보다는 성공한 것이 선이라는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있다.

마지막으로 영웅중심으로 사극을 꾸미는 방식과 생명 경시에 대한 부분이다. 역사는 영웅 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아무런 고민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이 영웅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 어린이들이 삶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결여시킬 수 있다.

인성과 세계관은 어린 나이에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된다. 텔레비전은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늘 순기능을 위해 역기능을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인격을 형성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는 우리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 어린이들의 요즘 생활은 참으로 바쁘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으로 가고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시간상 공부 이외에는 마땅히 할 것이 없이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부모님께서 맞벌이인 경우 가정에서 아이들의 생활은 스스로 통제할 상황이 아니다.

시간이 되어 텔레비전을 볼라치면 선생이라는 직업은 숨길 수가 없다. 몇 몇 어린이 프로, 교양과 다큐멘터리 이외에는 딱히 초등학생들이 볼만한 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요즘 방송사들은 가장 주력 시청 소비자 그룹을 청소년을 그 주 대상으로 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게 되어 쇼프로나 시트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전 프로에 우리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방송국은 결국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공공성보다는 시청률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청률 지상주의는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에 사고의 깊이를 요구하기보다는 단순히 귀와 눈을 만족시킬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의 전 영역에 노출되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편성한 프로그램들은 은연중에 잘못된 인성과 세계관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의 생활은 텔레비전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우선 자극성의 문제이다. 자라는 어린이들은 사고의 유연성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영상 매체에 매우 민감하고 큰 영향을 받는다. 방송국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대상에 맞게 성인, 청소년, 어린이 프로그램들을 구분하고 제작하고 있으나 그 기본적인 바탕에는 자극이라는 기제를 사용하고 있다. 텔레비전에 대상화된 시청자들을 묶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의 자극은 다음에는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우리 어린이들은 이런 강한 자극으로 인하여 차분히 내면을 성찰하는 자세보다는 보다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지고 또한 원하고 있다.

다음은 주도성의 문제이다. 텔레비전의 속성상 시청자들은 대상화 될 수밖에 없다. 개입 여지는 거의 없으며 장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바로 새로운 장면들로 인하여 온전히 대상화되고 있다. 대상화 경험의 일상화는 자기 생활을 자주성을 바탕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경험과 깊은 사고와 같은 어려움을 버리고 단순히 받아들이는 순응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이 많다. 주도성 훼손은 인생과 관계 깊은 문제이다.

사회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성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히 사회의 올바른 관계를 보고 듣고 느낌으로 인하여 체화되고 내면화된다. 하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에 상당수는 개연성이라는 명목 하에 잘못된 관계를 부각시키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끔 조직한다. 잘못된 관계들의 내면화는 바로 잘못된 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런 프로그램들은 공중파에 담아서는 안될 것이다.

<백석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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