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후보에 대한 표현 묵살은 기자의 숙명

총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제 조금 지나면 각 후보자들은 당락이 결정되고 부풀었던 총선열기도 수그러들 것이다. 지금 우리의 욕망이 어느 쪽으로 향해 있느냐는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났다. 국회에 입성하려는 후보자와 후보자를 통해 대리 욕망하려는 유권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한 꺼풀 벗겨진 우리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가단위의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계가 4년 만에 재조정되는 셈이다. 오는 4월 9일 밤은 그 재조정된 방향계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욕망을 가진 한 명의 유권자로서는 전혀 공정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한 명의 기자로서는‘공정보도’는 일종의 책무라는 강박이 늘 마음에 있었다. 지자체 권력을 감시하고 지역에 기반 한 정치인을 뽑는 일에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하는데 상당한 가치를 두는 지역신문 기자로서는 더더욱. 하지만 공정보도에 대한 강박은 전혀 인간적이지 못하다. 마음 속 깊숙이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 표현을 공적으로 철저히 묵살 당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자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공정보도가 과연 있기는 할까’라는 낡은 의구심도 이번 총선기간 가져보았다. 각 후보 관련 기사의 내용, 기사의 분량, 관련 사진의 크기, 기사의 위치, 기사의 순서는 어느 한 편으로 기울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계적 공정성 외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공정보도는 증발되고 남은 것은 ‘공정보도를 해야겠다’는 책임감뿐이다. 만약 가능하다 치더라도 고양시에 출마한 19명의 후보들을 기계적으로 공정성에 의해 보도했다면 이것이 과연 ‘공정한 보도’일까. 총선보도에서 신문의 편파 불공정 보도는 대부분 의도된 것이라 믿고 싶다.

후보자들을 인터뷰를 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후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잘 봐달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사실 상대방 후보를 되도록 폄하하고 자신을 부각시켜 달라는 뜻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공정하게 잘 봐주던지 공정하게 못 봐주던지 해야 할 터이지만 사실 공정하게 다 잘 봐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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