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의 가장 든든한 운동원”

이번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여성 후보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역 여성정치인의 간판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명숙, 김현미, 김영선, 심상정 의원이 출마한 고양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여성의원들의 선거운동에 후보들 보다 더 열심인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이들의 남편이다. 일 당 백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는 김영선 의원의 활약이 눈부시다면, 남편과 함께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다른 여성의원들의 모습은 훈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생업을 잠시 접고 아내의 일에 적극 발벗고 나선 이들의 ‘외조’는 부럽기까지 하다. 이에 해당 지역을 후보보다 더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유권자의 한 표를 호소하고 있는 이들 남편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그림자처럼 함께 하며 유권자 지지 호소
한명숙 의원의 남편 박성준 교수

“나는 감옥에서 몇 해 사는 동안, 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아주 멋지고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 산악인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 나 자신을 닦습니다. 이 경험 속에서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마터면 가장 가까운 생의 동반자를 아주 조금 밖에 이해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여성운동 및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다 1979년 구속됐던 한명숙 의원(일산동구. 통합민주당)이 자신보다 11년 먼저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있던 남편 박성준 교수(성공회대)에게 보낸 옥중서신의 일부다. 부부가 모두 옥살이를 해야했던 암울한 시절에도 좌절하지 않고 서로를 존경하고 격려했던 단면을 볼 수 있는 문구다.
사실 신혼 6개월만에 박 교수가 구속, 13년 간 매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옥바라지를 해 온 한명숙 의원의 사연은 이미 유명하다. 이후 한명숙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장관으로서, 또 총리로서 일을 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사람이 바로 남편, 박성준 교수다.
그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동안 잠자는 아내가 깰까 조심하며 아침이면 몸에 좋다는 ‘마’를 썰어주고 또 멸치볶음 같은 간단한 반찬이기는 하지만 도시락도 준비해 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또 아내의 선거운동을 도와 유세장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며 함께 명함을 돌리는 일에도 분주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집 근처 뒷산을 함께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는 박 교수는 “세상에서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내”라며 “예전에는 아내가 내 영향을 많이 받았다지만 이제는 내가 아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동반자로서의 아내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다.

 

아내가 미처 뛰지 못하는 곳 부지런히 챙겨
김현미 의원의 남편 백장현 씨

김현미 의원(일산서구. 통합민주당)과 남편 백장현 씨는 요즘 ‘따로 또 같이’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빡빡한 일정에 몸이 녹초가 되어 밤늦게 선거사무실에서 만나면 무뚝뚝한 듯한 백장현 씨가 슬쩍 김현미 의원의 어깨를 다독이며 “야위었네”라고 한 마디 건네곤 한단다. 짧은 말이지만 큰 위로가 되는 말이다.
사실 백장현 씨도 정치를 했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가 처음 만난 곳도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련) 사무실이었다. 두 사람은 시대적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동지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 초기, 연희동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부부가 함께 일해야 했는데 아이를 돌볼 사람은커녕, 당시에는 아이를 맡길만한 시설조차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골에 계신 친정 부모에게 아이를 보내기도 하고, 단칸방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언덕을 오르내리며 고단한 생활이 지속되기도 했단다. 김 의원은 “이 때의 경험이 서민의 삶과 육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정치를 접고 평범한 회사원이 된 백장현 씨는 그러나 아내 김현미 의원을 통해 ‘또 하나의 후보’를 자처한다. 아내의 지역구 출마가 처음이라 쑥스러워 그런지, 취재진의 사진촬영을 한사코 고사하면서도 백장현 씨는 아내가 미처 뛰지 못한 곳을 찾아다니며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이후에는 회사에 반차를 신청하고, 후보등록 이후에는 아예 휴가를 내고 ‘외조’에 전념하는 그는 유권자들에게 출근인사는 물론, 여성 유권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 밤 늦은 시각의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농촌지역 몇 번씩 돌며 후보보다 더 바쁘게
심상정 의원의 남편 이승배 씨

심상정 의원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진보신당 창당 과정에서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동안, 남편 이승배 씨는 일찌감치 덕양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특히 주교동이나 고양동 농촌지역을 여러 번 돌아다니며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지역현안을 파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그래서 이미 친숙해진 지역 주민들은 “남편이 출마해도 되겠네, 그려”하며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을 하며 만났다. 만남이 잦아진 두 사람은 급기야 국가기관의 ‘공인’을 받기도 했다. 91년 안기부에 끌려가 5박6일 조사를 받은 이씨는 수사관에게서 “요즘 광화문에서 자주 만나는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것. 이후 두 사람 모두 노동운동에만 열중하느라 혼기를 훌쩍 넘기자 노동계 인사들이 두 사람을 처녀귀신, 총각귀신 만들 수 없다며 맺어줬다. 남편은 심상정 의원 인생의 가장 큰 후원자다. 남편이 있었기에 지난 93년 구로공단 동맹파업 주동자로 10년간의 수배생활을 끝내고 아들 우균이를 임신한 채 법정에 섰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승배 씨는 집안 일은 바쁜 심상정 의원을 대신해 거의 도맡은 상태다. 이 씨는 “아들 아침밥 챙기는 것부터 빨래까지 모두 나의 몫”이라고 말한다. 청소는 “가급적 안 어지르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며 웃는다. 그는 “아침엔 아내가 누룽지라도 먹고 나가게 하려고 노력한다”며 “아내는 진정성이 보증수표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심 의원은 “남편의 가장 큰 도움은 토론을 분석하고 정책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이들 부부는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그 때처럼 여전히 뜻을 나누고 공유하는 동지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