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덕 / 높푸른21 상임대표·신도제일교회 원로목사

안개 속 정국 새로운 정치 기틀의 기회
국민 질책 두려워할 수 있는 결과 나오길

나는 지금까지 투표에 기권을 해 본 적이 없다. 대선이나 총선, 지자체 선거를 막론하고 말이다. 돌아보면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성한 국민의 권리를 기쁘게 행사하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군복무 시절에는 내무반에서 친절하게도 구체적인 기표방법(?)을 교육받은 후 중대장 인솔 하에 투표를 한 적도 있다. 그때에도 나는 내 소신껏 투표를 했다. 물론 결과는 뻔했다. 무시무시한 기합이 대가로 주어졌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고무신선거, 막걸리선거, 가까이는 차떼기선거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절에 비하면 선거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많이 깨끗해지고 선진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9총선을 앞두고는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정치판이 너무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 보수도 진보도 불분명하고 오직 정치적인 이합집산만 넘쳐난다. 심하게 말하면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고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생각마저 든다.
여권을 보자. 출신은 모두 한나라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대체 몇 나라인지 모르겠다. 야권 역시 다르지 않다. 줄기차게 민주라는 이름을 지켜오고 있지만 그 이름 앞에 당당한 이들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슈도 정책도 실종되고, 사분오열의 정치적 실리만 넘쳐나는 선거판에 한 표를 거들고 싶은 마음이 좀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성찰해보자. 과연 이 혼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큰 안목으로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때의 혼돈은 새로운 성숙을 향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요즘의 안개 속 같은 정국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기틀을 짤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유권자들에게 쥐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실속 있게 사용하려면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유권자들이 평소 자신이 지켜왔던 정치적 성향들을 조금 내려놓고 철저하게 인물 중심의 투표를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번에야말로 현란한 구호로 치장된 허상들을 벗어버리고 본질로 돌아가서 ‘정치세력’ 이 아닌 ‘사람’ 을 중심에 놓는 투표를 해 보자는 말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고양시의 네 곳 선거구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정말이지 다양한 생각이 교차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 사람 정도면 집권 여당의 정책이 길을 잃지 않고 집행되도록 성심껏 일할 인물이라 생각되는 후보가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합리적인 견제세력으로서 야당의 큰 일꾼이 되겠다 싶은 후보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은 꼭 선택을 받아서 소수세력을 대변했으면 하는 인물도 보인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바램이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표심’이 어느 한 곳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날 신문 어느 곳에서도 ‘압승’ 이니 ‘석권’ 이니 하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 선거로 마무리되기를 바래본다. 여, 야, 군소정당을 막론하고 국민이 보내준 성원을 깊이 감사하고, 국민이 던져준 질책을 두렵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결과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늘 해왔듯이 이번 4·9 총선에서도 오전5시 새벽기도를 마치고 투표소로 달려가 맨 앞에 줄을 섰다가 정각 6시에 투표가 시작되면 첫 번째로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해야겠다. 너와 내가 어우러져 조화와 균형 속에서 더불어 나아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꾹꾹 눌러 찍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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