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혁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총선에서 선거운동  ‘돌격대’가 된 지방의원
선진화 위해 ‘지방 있는 지방정치’ 이뤄져야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국가비전은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 건설’이다. ‘선진화의 내용’은 4 9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될 정책들을 통해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선진화의 목표’는 비교적 분명하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 되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일류국가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볼 때 우리에게 눈에 띄게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제대로 된 지방자치’이다.

중앙정치 차원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과거 20여 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선거는 예전보다 훨씬 공정하고 깨끗해졌고, 군사쿠데타의 망령은 사라졌으며,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성은 현저히 증대됐다. 국가와 정치권을 견제하는 제3의 세력으로서의 시민단체의 영향력 또한 상당히 신장됐다.

하지만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민주주의의 모습은 초라해진다. 낮은 투표율 속에서 진행되는 지방선거는 민의를 대변하는 통로로서의 역할보다는 지역정당 구도 하에서 중앙당이 지방의회의원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을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 정당체계에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들은 지역의 주민들보다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구당 국회의원이나 중앙 정치권의 눈치를 훨씬 더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선거는 지방의 현안을 두고 전개되기보다는 중앙정치이슈를 쟁점으로 삼아, 중앙의 정치 기류나 중앙의 유력 정치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대부분의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전초전장이 되어 지방정치인들은 중앙당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총선 때가 돌아오면 그렇게 당선된 지방의원과 단체장들이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선거사무실에 진치고 앉아 선거운동의  ‘돌격대’가 되어준다. 오죽하면 최근에 출간된 지방선거에 관한 학술서의 제목이 ‘한국지방선거에는 지방이 안 보인다’가 되었겠는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다 보니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지방의회의원들의 대표성과 자질 또한 개선되기 힘들다. 지방의회의원은 지역주민의 직종, 학력, 성별 등을 골고루 대표해야 하는데 지방선거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지방의회의원들의 경우 해당 지역의 사업가나 재력가들이 지역 국회의원이나 중앙 유력자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의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방의회는 자기 사업을 위한 활동무대’로 간주되고 ‘의원직은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나라가  선진화를 이루려면  세계일류국가들에 예외 없이 존재하는  ‘지방 있는 지방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 지방정치에 지방이 없는 까닭은 지역당 체제와 중앙당의 지역후보 공천이라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지방 차원에서 권력자와 권력기관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민단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는 시민단체의 수가 적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중앙의 전국적 시민단체들에 비해 정책전문성이나 여론 조성 동원 능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중앙정부는 강력한 시민단체들과 언론에 의해 감시 견제되는데 반해 지방에서는 단체장을 감시 견제할 장치나 기제가 부족하다. 이런 관점에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 활발한 지방시민사회와 올곧은 지방언론은 필요조건이다. 한국에서  ‘지방 없는 지방정치’ 가 지속되는 한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 건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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