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완수 / 고양여성민우회 활동가

호수공원 벚꽃나무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맘때가 되면 나는 늘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곤 한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남편과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가자면 마음 한구석에 걸림돌이 되어 결국 동반하기 일쑤였다. 이젠 아이들이 내 머리 하나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 버려 같이 나서려 하지도 않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여행’이 로망으로 남아있다. 분명 난치병인가 보다.

이런 내게 충동적으로 뛰쳐나가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는 호수공원은 큰 위안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느 한때도 좋지 않을 때가 없지만 특히, 벚꽃이 환하게 피는 이맘때가 되면 활짝 핀 꽃보다는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꽃잎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을 추억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하기야 모든 어린 시절의 추억이 행복하지만.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담임선생님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 나들이를 온 적이 있다. 결혼식이 끝난 화창한 일요일 오후, “시골뜨기들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 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 없다”는 게 우리들의 의견이었다. “시간여유가 없으니 고궁에 벚꽃 구경이나 가자”는 수학 선생님을 따라 간 곳이 창경원, 지금의 창경궁이었다. 화사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상큼한 바람은 너무 잘 어우러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떨어지는 수많은 꽃잎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짧은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는 교복차림의 시골뜨기에겐 난생처음 보는 황홀한 풍경이었다. 분명 여러 일들과 구경거리가 있었겠지만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 보는 꽃눈과 화사한 햇살, 상큼한 바람은 동화 속만큼이나 행복해서 넋을 잃고 황홀했다. 흩날리는 꽃잎에 온 몸으로 환호하며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속에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쁘게 나올 사진들을 기대하며 아쉬운 꽃구경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 뒤 들려온 소식은 필름이 햇빛에 타버려 사진을 한 장도 뽑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사진기의 주인을 원망하였지만 황홀하기까지 했던 그 날은 두고두고 우리들의 추억거리로 남아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날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더라면 이렇게 그리워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때의 친구들은 모두 제 갈 길로 헤어졌지만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가슴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화사하게 핀 꽃송이에 온 몸으로 환호하지도, 황홀해하지도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호수공원에 만개한 꽃길을 걸으면 그때의 시골뜨기 단발머리가 생각나 가슴이 뛴다.
내 난치병에 위로가 되어주고 설레는 추억으로 가슴 뛰게 하는 호수공원과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일산이 그래서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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