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사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시청을 찾은 주민들이 시청 직원들과 심하게 다투고 있으니 취재를 좀 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한 여성의 비명소리가 창문너머로 들려왔다. 신문사가 시청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지라 시청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소리는 신문사에 앉아서도 들린다.
후다닥. 취재수첩을 들고 시청으로 향했다. 마침 사진기자도 사무실에 있어 함께 갈 수 있었다. 시청 현관에는 공무원 및 시청 청원경찰 등과 주민 10여 명이 대치 중이었다. 인근 지역 개발이 난개발이 될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시와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자, ‘시장면담’을 요청하며 무작정 청사를 찾은 경우였다.

나는 주민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 때였다. 한 쪽에서 시끄럽다 싶어 봤더니 본사 사진기자의 취재를 청원경찰이 제지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급기야 한 청원경찰이 우리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더니, 결국 한쪽으로 몰린 사진기자가 직원들의 힘에 밀려 넘어지며 꽤 심한 찰과상을 입고 말았다.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을 찍는 일이 주민들과 대치해 있던 공무원들에게 유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사생활의 현장도 아니요, 개인의 초상권을 침해할 사진을 찍는 경우도 아닌. 시청 청사에서 민원이 발생한 경우를 취재하는 자리에서 ‘물리적 제지’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민주정치의 필수적인 사상표현의 자유이며 국민의 ‘알 권리’와 매스컴의 ‘알릴 권리’보장은 꼭 법률책을 뒤적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안이다. 물론 그러한 권리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되며,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다.

어쩌면 기자는 그 애매한 경계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또한 보도하려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혹은 진실인지 아닌지 수없이 되물어야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훈훈한 미담 취재나 정보 관련 취재가 아닌 경우 기자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취재현장을 다니다보면 기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 기피하거나 불쾌해하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언짢아하는 경우와 마주하게 된다.

비판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어떤 조직이든 성장할 수 없다. 가리고 숨기는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 혹은 ‘특종을 위한 비판’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한 건강한 비판’을 할 수 있을 때, 행정기관 및 각종 기관들은 칭찬 뿐 아니라 ‘쓴 소리’에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때 이 사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들은 그러한 믿음으로 오늘도 기자를 ‘밉상’으로 보는 취재원에게 집요하게 진실을 혹은 사실을 캐묻는다. 그것이 언론의 취재할 권리이고 의무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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