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일 / 동화작가. 고양아동문학작가회 회장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지만, 그 중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영향만큼 큰 것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한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의 청소년기 역시 선생님의 영향은 지대했다. 나는 일찌감치 아버지를 여의어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든든한 기둥 같은 분이신데, 나는 아버지를 의지하고 그에게 기대서 미래를 꿈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때였다. 당시 나는 집안 형편상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중학교가 의무교육이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중학교에 진학하였지만, 당시만 해도 가정형편이 여의치 못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옆 동네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가 생겼다고 했다. 나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학교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산 속에 있었다. 학교 건물은 작았으나 아담했고 운동장도 넓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교를 세우신 분은 그 동네 출신 허석 선생님이시고 그 학교를 맡아 운영하시는 분, 다시 말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신 선생님은 허 선생님의 사범학교 동기이면서 가장 막역했던 친구였다.

당시 인근 주변에서 배우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대장동과 내곡동은 물론이고 능곡, 원당, 찬우물, 골머리 그리고 멀리서는 백석리와 백마 부근에서까지 아이들이 왔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낮에는 각자 집에서 일하거나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 모여 공부를 하였다.
선생님은 참으로 다재다능 한 분이었다. 특히 예술적인 부분에서 그러하셨는데 문학적 소양도 남다르시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셨다. 그 분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눈을 감게 하고 풍금을 치시면 우리는 꿈속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내가 문단의 말석이나마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런 선생님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조그만 수첩에다 길을 걷거나 산 속을 걸으면서 꽃을 보거나 생각나는 단상이 있으면 수첩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적고는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감상이지만 선생님은 내가 적은 글을 보고 평을 해주시고 격려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위대한 문학가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 중 러시아의 작가 토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면 나는 넋을 놓고 들으면서 나도 이 다음에 그런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지 하고는 마음을 다지곤 했다.

요즘은 존경할 선생님도 없고 제자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며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다고들 말한다. 물론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열과 성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올바로 지도하는 선생님은 분명히 계실 것이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만 되면 지금은 멀리 미국에 계시는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그 분은 나에게는 선생님 이전에 아버지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분명 그런 선생님이 계셨기에 행복하지만, 지금 세대는 어떠한가. 참으로 존경하고 믿고 따를 선생님이 얼마나 계시는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봄, 5월에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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