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토박이’까지는 왔는데…

사람, 사람, 사람들이 모였다.
아파트라는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변화는 사람. 92년 강촌마을 첫 입주를 시작으로 30만의 사람들이 일산 신도시에 살기 위해 들어왔다. 허허로운 아파트촌을 사람 사는 동네로 바꾼 건 또 사람들이다.

초기에 입주 10여 년을 살아온 이들이 ‘신도시 토박이’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신도시 형성 초기 시장 입후보자를 묻는 질문에 ‘고건’이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고양시에 살면서도‘나는 서울시민’이라 생각하던 시절 이야기. 이제 일산 신도시 사람들이 일산을 제2, 제3의 고향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아직 ‘고양시 사람’은 아니다. ‘일산 사람’일 뿐. ‘고양시 사람’으로 버무리기에는 세월이 부족한 탓일까.

아파트의 시멘트 독이 빠지면서 사람 냄새를 내기 시작했다. 생활의 터를 근거로 하는 교육모임, 생협, 인터넷 모임들이 그것. 오랜 숙원이던 ’고교 평준화’를 이뤘다. 학부모,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같은 교육 모임이 만들어 낸 작품.

공동육아조합도 일산이 살 터인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터다. 일산 야호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덕양구에 도토리, 도깨비 어린이집들이 줄을 이었다. 야호 어린이집은 일산신도시가 자라듯 자랐다. 이 조합의 조합원들은 ‘아이땅 우리땅’이라는 방과후 학교까지 열었다.

일산 신도시는 ‘자족도시’라는 원대한 꿈은 일단 접었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주거 터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모임도 교육, 먹거리 같은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많다. 생협운동도 그 하나다. 한 살림, 여성민우회, 고양두레 생협 들이 생겼다.

인터넷 모임도 있다. ‘지하철 3호선 화정에서 대화까지’, ‘일산에 살어리랏다’, ‘일산 대딩모임’같은 젊은이들이 포털사이트에 자리잡고 나름의 ‘일산문화’를 만들어 간다. 이에 맞선 아줌마들이 ‘아줌마들의 일산 살기’로 맞대응하고.

생각이 같은 이들이‘끼리끼리’ 부대끼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일산신도시에 또아리를 튼 증거이기도 하다. ‘끼리끼리’ 때문에 생기는 상처 또한 같이 안고….



거리, 거리, 거리가 만들어졌다.
사람이 안이라면 거리는 밖. 도시가 제법 자리를 잡으면서 유명한 ‘거리’도 생겼다. 일산 3동 후곡마을 주변은 ‘학원거리’. 일산4동의 ‘일식거리’, ‘카페거리’. 주엽동의 ‘유흥거리’, 대화동의 ‘모텔거리’까지.

‘학원거리’는 고양시 대형 입시학원의 집결지다. 95년 글맥학원이 들어서고 종로, 대성, 대륙, 지캠프 같은 덩치 큰 학원들이 모였다. 고양시에 대형 입시학원은 열손가락을 꼽는다. 대부분 ‘학원거리’에 있다. “모여야 잘산다”는 상업 정신이 모인 곳.

먹거리 또한 일산의 ‘자랑거리’ 아닌가?
맛만 있어서도 안 된다. 멋있는 바깥 모양새에 분위기 있는 안 모양새까지. ‘일식거리’도 95년 즈음 ‘이어’, ‘왕가’들이 하나 둘씩 생기더니 지금은 30여 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일산4동 옛 지명을 따 ‘밤가시 전통일식타운’으로 경기도 인정까지 받았다.

‘유흥거리’와 ‘모텔거리’는 이웃해 있다. ‘놀고, 자고’ 차례에 맞게. 고양시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장본인. 주말이면 원정객까지 어울려 흥청인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주엽역에서 백석역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유흥도시의 유명세를 치르는 현장?

원정객을 사로잡는 게 또 하나 있다. 차고 넘치는 유통업체. ‘살기 좋은 일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공헌자다. 대신 주차와 교통체증이라는 ‘문제아’를 낳고 있지만.

“파주로나 가야지.” ‘전원도시’라는 말에 혹해 일산으로 이사와 만족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되내이는 소리. 도시가 커지면서 주차, 교통 같은 문제가 쌓이고 쌓인다. 겁 없는 행정기관의 ‘개발 제일 주의’가 효소를 뿌리고 있다. 삶의 질은 시민만의 몫은 아니다. 행정책임자가 같이 나눠야 할 문제.

도시가 만들어지고 10여 년. 스스로 ‘일산의 달동네’라고 부르는 곳도 생기고. 전국에서 4강으로 꼽히는 교육열도 일산이 가지고 있는 숙제라면 숙제.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같이 살아가기다. ‘몸은 고양에 정신은 서울’에 둔 이라면 고양 일을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신도시 토박이’라 자처하는 이들도‘일산사람’이 아니라 ‘고양시민’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닐까.

백석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10년 전.
‘강제 철거’를 서두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백석리 사람들은 드러눕고, 오물을 뿌리고. 농약은 서로 사이를 오갔다. 철거반 중에 농약 세례를 받은 이는 만화방을 전전하며 새우잠을 자는 18세의 청년. 뿌린 이는 13세 소년. 이 소년은 몸싸움 중에 철거반원에게 맞아 다친 백석리 김모씨의 아들이었다. 소년 또한 되넘긴 농약을 뒤집어쓰고 병원에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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