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복 / 한양대 교수, 전문직윤리연구소장

‘글로벌리더’만을 꿈꾸는 사회
진정한 팔로우십이 오히려 중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간지를 위시한 언론에서 두드러지게 언급되는 용어가 있다.
‘글로벌 리더’, ‘리더십’이라는 단어다. 최근에는 박지성의 맨유가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하자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을 대문짝처럼 보도한 신문이 있는가 하면, 낙동강 오리알처럼 지지도가 뚝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 소통부재의 리더십과 복당정국을 맞아 상종가를 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차갑고 단호한 리더십에 대해 자세히 다룬 언론도 있다.

‘글로벌리더의 양성’을 표방하고 있는 민족사관학교와 국제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학원, 학부모 할 것 없이 사력을 다하고 있고, 대학은 ‘글로벌리더전형’이라는 요상한 입시전형을 만들어 수험생을 유인하고 있다. 또 리더십과정을 설치해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글로벌리더에 필요한 과목들을 제공하는 서비스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리더를, 그것도 글로벌리더를 그토록 강조하고 요구했는지 분명치 않지만, 정치적으로는 세계화, 국제화의 기치를 내건 YS의 문민정부에서, 문화적으로는 경이로운 TV 시청률을 기록한 ‘불멸의 이순신’과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 히딩크의 리더십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리더와 리더십의 덕목이 주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리더, 글로벌리더란 누구인가. 오감의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눈은 큰 비전으로 채우고, 머리는 전문지식으로 채우며, 입으로는 국제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가슴은 다른 문화와 인종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채우고, 손으로는 첨단 기술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리더란다. 참으로 초인의 경지다. 그런데 이러한 글로벌리더를 양성한다는 외국어고에서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합격자수에 감격해하고, 대학의 리더십센터에서는 명함 건네는 방법과 와인 따르고 마시는 방법을 가르친다.

불멸의 이순신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일본 차세대 정치지도자의 산실, 마쓰시타 정경숙의 세키 기요시 이사장은 지도자의 세 가지 힘으로 체력, 도량, 결단력을 든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과 약자에게는 무한한 배려와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를 리더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용과 세심한 마음은 외국어를 잘한다고,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첨단기계를 잘 다룬다고 구유(具有)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관대함과 배려는 그 적지 않은 부분이 선천적으로 타고 난 성품일 수 있고, 후천적으로 습득된다고 해도 외국어나 얄팍한 처세술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대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고전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약자와 소수자의 아픔을 직접 더불어 체험하면서 획득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리더가, 그것도 글로벌 리더가 행복하고, 팔로우어(follower. 피지도자)는 불행한가. 진정한 팔로우어가 없는 리더가, 참된 팔로우십(followership. 피지도자의 능력, 자질)이 없는 리더십이 과연 가능한가. 충직하고 현명한 그리고 소리 없이 기꺼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가 없었다면 리더 이순신은 가능했을까. 왜 리더 이순신은 역사의 한 장면에 새기고, 그를 따랐던 또 그와 동시에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팔로우어 졸개들을 언급하는데 역사는 인색한 것인가. 초등학교 시절 줄반장도 못했던 사람들의 한갓 푸념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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