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한다는 것,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화가가 된다는 것’과 ‘그림만 그려서 밥을 먹고산다는 것’,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산 넘어 저쪽에 걸려있는 무지개만큼이나 멀 수 있다. 그래서 취미로 예술을 한다. 혹은 부업으로 예술을 한다. 시인이면서 교수, 연극배우이면서 노점상, 재즈 싱어이면서 찻집운영, 이런 식이다. 김수영 시인은 양계장을 운영했고 이상 시인은 주점을 운영했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술작품의 교환가치는 자본주의 거래 시스템에서 늘 퉁겨져 외톨이 신세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과 밥은 늘 이렇게 불화 했다. 예술이 바로 직업이 되는 사람들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예술은 자본권력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재테크 수단이었던 부동산이 각종 규제로 투자매력이 점차 하락하자 이를 대체하는 재테크 수단으로 ‘아트 재테크’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유명 작가의 미술품을 사들여 가격이 오른 후 되팔아 수익을 배분하는 아트펀드상품을 출시해 짭짤한 수익을 거둔지 꽤 됐다.
예술작품은 이미 다수 예술감상자들에게 정신적 효용을 주기 위해 전시되거나 공연되기보다 재산가치로 흥정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본권력에 눈치를 보는 것을 누가 탓하랴. 이 땅의 예술인 절반 이상이 월 소득 100만원 이하인 현실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을 한번 해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무척 궁금해진다. 솔직히 사회에서 성공한 예술인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한 예술인을 만나보고 싶다. 시련에 부딪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과 작품의 완성을 위해 현실적 배고픔을 스스로 위무하며 끊임없이 정신적 위장에 예술적 영감으로 채우는 작곡가를 만나보고 싶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일생을 건 프로젝트이자 ‘남는 장사’라고 말하는 행위예술가를 만나보고 싶다.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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