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한잔에 인생을 이야기하다.

열 살된 아들은 백혈병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인. 아버지는 아들의 골수이식수술비 마련을 위해 자신의 각막을 팔고 애꾸눈이 된다.
아들은 병이 낫지만 아버지는 간암말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죽음을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헤어진 아내에게 아들을 보낸다. 그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가시고기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특별하지 않다. 단지 조금은 낯선 부성애를 소재로 삼았을 뿐.
그런데 이 소설이 한동안 사람들의 눈시울을 그토록 뜨겁게 만든 이유는 뭘까.

가시고기는 이상한 물고기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자마자 떠나버린다. 아빠 가시고기 혼자 남아 알을 지키고 부화시킨다. 알에서 나온 새끼들은 아빠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로 간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그 존재의 무거움

지난 한해 살얼음판 걷듯 살아간 남자들이 있다. 이번에 수능 본 자식을 둔 고3 아빠들.
아내는 자식 생각에 자연히 남편에게 소홀해지고 아이들에게 신경 쓰려고 해도 외면당하는 우리 아빠. 왕따 아빠.
아버지 헛기침 한 번으로 집안이 조용해지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바쁘다. 그 동안 회사 일로 바쁘다며 가족을 소홀히 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아 뭐라 큰 소리 한번 지르기도 어렵다.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들을 접할 수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수칙이 있을 만큼 좋은 아버지 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내는 아이들에게 매달린다. 그게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자식 생각하는 걸 탓할 수 없으니 어쩌랴.

1남 1녀의 아버지 박정석(45)씨. 그는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스킨쉽을 한다. 안아주고 뽀뽀도 한다. 아들과 팔씨름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가엽게 보인다. 그게 안쓰러워 늦게 오는 자식을 마중나간다. 고 3인 딸을 둔 오진원(53)씨는 밤 12시가 되면 버스정류장 앞에서 딸을 기다린다. 부모가 돼서 아이들 공부하는데 놀러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어디 놀러 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

이제 수능이 끝났다. 그러나 아버지들의 어깨는 더 무겁다.
버는 돈은 한정돼 있고 아이들 커가면서 들어가는 돈은 점점 늘어난다.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로 학원비와 과외비로 지출된다.
"앞으로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못 잔다"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아이들은 아빠를 탓한다.
다른 집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아빠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빠는 섭섭하고 답답하다.

윤덕재(50)씨는 "아이들이 용돈 달라고 할 때만 애교를 부린다"고 섭섭해한다. 아빠를 그저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윤씨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한다. 대학에 안 가고 기술을 배우겠다는 아들을 뒷바라지할 생각이다.

그런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왕따 아빠들이 늘고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엄마를 잘 따른다.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사소한 것까지 챙겨준다. 반면에 아버지들은 표현에 약하다. 엄마나 아빠나 자식 사랑은 똑같은데 그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 사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거는 것에 인색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고.
그러나 또 사람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흔들리면 가정이 무너진다고.
아버지는 여전히 가정의 중심이고 존경의 대상이다. 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치 않듯이 아이들도 마음 표현에 서툰 것이 아닐런지.

▶남자 40대. 그들에게도 꿈이 있을까.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떠나 한 남자로서 스스로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까.
대개 이들은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고 부하직원들에게 치이며 산다. 젊을 적 자신만만함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출세를 위해 아둥바둥 살아왔지만 이제 와서 보니 공허하더라"고 차성동(47)씨는 말한다.

차씨는 남자가 사십줄에 들어서면 사추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사추기.. 사추기의 남자들은 남의 눈치 보는 것에 익숙하다. 심지어는 술값을 언제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눈치를 보며 산다. 그러나 사춘기 아이들처럼 반항을 했다가는 회사에서 잘리기 쉽다.

이들은 ‘내가 지금까지 뭘 했나’라는 생각을 한다. 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아 허무하기도 하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건 가족이 있기 때문. 아무래도 가족이 없는 자신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가끔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자식들 웬만큼 키워 놓은 이 나이 아줌마들이 갑자기 우울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옛날 첫사랑이 보고 싶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는 우수에 젖은 남자.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고 바닷가를 걷는다. 멋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만 멋있다. 어찌 보면 궁상맞기까지 하다.

세상은 “남자가 왜 그렇게 나약하냐”고 질책한다. 여자들이 “여자가 무슨…”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남자도 “그래도 남잔데…”라는 말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남자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세상이 말하는 약한 남자가 되기 싫은 것이다. 그들은 강한 남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배웠다. '강한 남자 콤플렉스'는 남자를 스스로 가두게 한다.

이들의 소망을 소박하다. 자식 잘 되고 가족들 건강한 것. 그리고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고도 한다.
차성동씨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글을 쓰면 가난하게 산다는 어른들 말씀에 더 글을 쓰지 않았다고.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그는 지금 틈틈이 글을 쓴다.

옛말에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만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했다. '태어날 때,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남자도 울 수 있다. 영화를 보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울 수 있다. 가족의 품에 기댈 수 있다. 오늘 소주 한 잔 들이키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어깨가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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